[천자칼럼] 토왕성 비경(秘境)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설악산 10대 명승이자 3대 폭포의 하나인 토왕성폭포가 45년 만에 공개된다는 소식에 설레는 사람이 많다. 겨울철 빙벽 등반객이 아니면 2㎞ 이상 멀찍이 떨어져 봐야 했던 장관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조선 숙종 때 문인 김창흡이 《설악일기》에서 중국이 천하명산이라고 자랑하는 여산(廬山)보다 낫다고 평한 곳이라니 더 궁금해진다.

토왕성(土旺城)폭포는 토왕폭 또는 선광(禪光)폭포로도 부른다. 멀리서 보면 마치 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 위에 널어 놓은 듯한 풍광이다. 외설악 화채봉(1320m)에서 흘러내린 물이 칠성봉(1077m)을 끼고 돌아 암벽에 긴 폭포를 만들었다. 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 등 장장 320m의 연폭(連瀑)으로 국내 최대다. 이 물은 토왕골을 지나 비룡폭포, 육담폭포를 거쳐 쌍천(雙川), 동해로 흘러간다.본래 명칭은 ‘성할 왕(旺)’이 아닌 ‘임금 왕(王)’을 써서 ‘土王城’이었다. 영조 때 《여지도서(輿地圖書)》 ‘양양도호부’편이나 《양양부읍지》에 기록돼 있다. 토왕성폭포에 대해 “세상에 전해오기를 옛날에 토성왕(土城王)이 돌로 성을 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폭포가 있어 석벽 사이로 천길이나 날아 떨어진다”고 묘사했다. 고려때 산성인 권금성(權金城)처럼 성의 흔적이란 얘기다.

그러나 일설에는 “토기(땅의 기운)가 왕성하지 않으면 기암절벽이 생기지 않는다”는 오행설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토왕성폭포는 석가봉, 문주봉, 보현봉, 문필봉, 노적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한자 표기가 ‘土旺城’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산악인들은 토왕성폭포를 대승폭, 소승폭과 함께 한국의 3대 빙벽으로 꼽는다. 겨울철 필수 훈련코스다. 1997년 국내 첫 빙벽등반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가장 긴 폭포 상단은 평균 경사도 85~90도로, 강촌 구곡폭포와 더불어 총 8단계의 빙벽등급(WI·water ice) 가운데 ‘WI 5’ 수준이라고 한다. 대승폭은 ‘WI 6’으로 더 가파르다.전문산악인만 찾던 토왕성폭포를 일반인도 감상할 수 있게 돼 반갑다. 비룡폭포까지 기존 탐방로에서 410m만 더 오르면 된다. 육담폭포 출렁다리도 32년 만에 재정비돼, 2.6㎞의 탐방로를 지나며 3대 폭포를 모두 볼 수 있다. 그러나 토왕성폭포로 직접 오르는 것은 절벽, 낙석 등 위험으로 계속 통제된다고 한다. 우리 산하엔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 참 많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