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양김시대의 종언…성숙한 민주주의 갈 길 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어제 영면에 들어갔다. 한국 민주화의 거목으로 큰 족적을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이로써 현대 정치사의 한 장을 차지했던 ‘양김(兩金) 시대’도 완전히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한국 정치사에 큰 별로 기억될 고인의 업적과 공과는 역사가 좀 더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장기간의 군 출신들에 이어 ‘문민정부’를 열었고, 하나회 숙정과 금융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시행, 부패 척결 등 많은 일들이 그의 대통령 재임 시절에 있었다. 그 전에도 9선의 국회의원을 지내며 민주화와 인권 증진을 위해 투신해온 그의 공로는 한국 현대사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군 출신 통치의 옛 체제를 바꾸고 낡은 관행 청산 등으로 사회시스템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던 헌신적인 노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그늘도 남겼다. 재임 때 아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는 오점을 남긴 데다 임기 말엔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던 외환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한국 민주주의사에 큰 획으로 남을 것이지만, 양김 대통령 시대(1993~2002)는 인권 신장이라는 빛만큼이나 미성숙한 민주주의 범람이라는 그림자도 남겼다. 민주 정치의 주체들이 예외 없이 스스로의 행동과 선택에 궁극적 책임을 지는 성숙한 민주사회의 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한 채, 인민 민주주의적 포퓰리즘이 발호하게 된 시초가 이 시기였다. 소위 ‘87년 체제’ 이후 지금까지 계속 확산돼온 정치권의 인기영합 정책 남발, 극한투쟁으로 치달아온 노동운동, 반대만 외쳐 댄 사회단체들의 무책임성도 그 뿌리는 여기에 닿는다.

정치적 자유와 대중 민주주의의 토대 형성에서 거듭 고인의 양김 시대가 남긴 부(負)의 유산도 돌아보게 된다. 지금 정치가 너무나도 포퓰리즘에 좌우되는, 무철학 무신념 무원칙 무소신의 한없이 가벼운 정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양김 시대의 민주화 이념을 제대로 계승·발전시키지 못한 채 비전도 없이 과잉 민주주의에 스스로 휩쓸려버린 후세대 정치그룹의 오류가 크다. 아직도 고인 세대의 그늘에 있는 정치인들에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위한 깊은 성찰과 노력을 요망하며,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