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이번에도 '부자감세'라고 ?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부자처럼 사람들의 인식이 이중적인 것도 드물다. 모두들 부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정작 부자에게는 늘 비판과 손가락질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부자에 대한 이중잣대가 한 나라의 주요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건 분명 문제다. 툭하면 불거지는 ‘부자감세’ 논란이 바로 그렇다.

최근 부자감세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ISA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다. 정부가 발표한 원안은 5년간 매년 2000만원 납입 한도로 총수익 200만원까지는 비과세한다는 것이다. 가입 자격은 근로·사업소득자로 소득 제한은 없다. 야당 측에서는 일찌감치 ISA가 부자감세라며 반대 입장을 밝혀 왔다. 가입자의 소득 제한이 없다는 게 주 이유다. 연간 2000만원 한도라지만 재형저축 가입자의 연간 납입액이 평균 2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고 매년 2000만원 정도를 넣을 수 있는 부자들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것이다.하지만 정작 금융권 관계자들은 정반대 이야기를 한다. 정부안이 세금혜택은 ‘찔끔’인데다 소득이 있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어 금융사각지대를 만들었다며 가입 대상을 무소득자까지 확대하고 감세 혜택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세수 부족도 감안해야 하는 데다 부자감세 논란을 의식하다 보니 어정쩡한 안을 내놓았는데 여기저기서 욕만 먹고 있는 형국이다. 여야는 소득 5000만원 이하는 비과세 혜택을 250만원으로 확대하고 의무가입 기간도 3년으로 완화하는 쪽으로 의견을 접근 중이다. 하지만 부자감세 논란으로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누더기가 된 ISA가 서민 재산 형성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부자감세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달 발표한 세제개편안에서도 핵심적 개념이다. 과표 500억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과표 1000억원 초과 기업의 최저한세율을 17%에서 18%로 각각 올리는 안이 대표적이다. 야권은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를 두고두고 부자감세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법인세 인상을 주장한다. 그런데 법인세율은 과거 20년간 지속적으로 인하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유독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만을 부자감세라고 계속 우기는 근거는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지금 전 세계에는 법인세 인하 열풍이 불고 있는데 한국만 거꾸로 가자는 것인가.

개별소비세를 내린다고 해도, 담뱃값을 올린다고 해도 모두 부자감세요, 서민 증세라고 한다. 세금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부자감세를 들고 나온다. 누구를 부자로 볼 것인지, 세제개편이 소득 역진적인 것인지 자세히 따져보기도 전에 부자감세 프레임을 들이댄다. 정부 여당도 부자감세 소리만 나오면 반박보다는 꼬리 내리기부터 바쁘다. 그러니 세제는 갈수록 엉망이 되고 제대로 된 세제개편은 엄두도 못 낸다. 청년희망펀드나 농어촌상생기금을 아무렇지도 않게 기업에 떠넘기는 것도 “부자감세 받고 있으니 돈 좀 내놓은들 뭐가 대수냐”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물론 세금은 번 것에 상응해야 하고 조세 형평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부자감세, 서민증세’ 주장을 무소불위처럼 휘두르면 그 어떤 세제개편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다. 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 입각한 세제 논의가 필요하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