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속·발암물질, 아빠 통해서도 유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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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제니스 베일리 미국생식학회 차기회장
차광렬 차병원 회장 등이 만든 환태평양생식의학회 초청 방한
각종 오염물질이 정자 통해 손자에게까지 전달
난임·태아 질환연구 때 남성 후성유전도 고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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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리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정자가 만들어질 때 일어난 변화가 자식은 물론 손자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암컷 쥐에게 농약, 다이옥신 등으로 오염된 물개를 먹게 한 뒤 이 쥐가 낳은 수컷 쥐(A)를 이용해 후세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했다. 그 결과 A의 정자를 통해 생긴 2세대 쥐(B)는 체중이 줄고 생식기능이 떨어지고 내장 위치가 바뀌는 기형이 나타났다. B의 후손인 3세대 쥐(C)에게도 같은 문제가 생겼다.베일리 교수는 “A의 정자는 암컷의 뱃속 태아일 때 이미 오염된 상태였다”며 “이렇게 바뀐 수컷의 유전정보가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에 전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남성 난임 연구는 정자 운동이 활발한지, 정자 개수가 몇 개인지 등에만 집중됐다. 이번 연구는 난임 연구를 할 때 남성의 후성유전 정보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후성유전은 생활습관, 환경오염 등으로 바뀐 유전정보가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는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살충제를 많이 쓰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중금속 등에 오염된 음식을 많이 먹는 북극의 에스키모인 등을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일리 교수는 내년부터 미국생식학회 회장을 맡는다. 미국생식학회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 등 기초생식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5000여명이 모인 단체다. 이번 방한은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이 설립한 환태평양 생식의학회 초청으로 이뤄졌다. 환태평양 생식의학회는 학술대회에 주요 해외 과학자를 초청해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교류의 장이다. 베일리 교수는 “환태평양 생식의학회는 20년 동안 여러 연구 성과를 내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며 “기초와 임상분야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의미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