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보관소 아닌 생산자…전시 검열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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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첫 외국인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미술관은 무엇을 하든 최고를 지향해야 합니다. 관람객이나 사회에 최고의 선물이 돼야 합니다.”
유망작가들 국제무대에 알리는 데 앞장
큐레이터 해고 논란엔 "사실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상 첫 외국인 관장으로 14일 취임한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신임 관장(49)의 취임 일성이다. 마리 리바스 관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어로 첫 인삿말을 건넨 뒤 “감히 한국 미술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어도 한국 작가들의 열렬한 팬이라고 자부한다. 여러 세대에 걸친 한국 작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에 관심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마리 리바스 관장은 미술 전문가로서의 오랜 경력을 강조하며 임기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을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30년 동안 미술비평가, 큐레이터, 관장 등 다양한 역할을 해온 ‘관장형 큐레이터’”라며 “유럽 남미 아시아 등지에서 세계 유수의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컬렉터, 후원자들과 쌓은 두터운 인맥이 국립현대미술관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리 리바스 관장은 네덜란드 현대미술센터인 비테 데 비트 예술감독, 스페인 현대미술관인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MACBA) 관장을 지냈다. 특히 MACBA를 7년간 이끌며 관람객 수와 입장 수익을 늘리고 해외 미술관과 협력 체제를 구축해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았다. 그가 국립현대미술관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마리 리바스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생각도 내놓았다. 국제적 역량 강화가 첫 번째다. 그는 “이 부분은 이미 한국 작가들이 직접 시작해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며 “창의적인 한국 작가들의 역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명성과 평판이 형성되고 확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리 리바스 관장은 “한국 미술계에는 종합적인 연결고리가 부족해 좋은 작품들이 외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며 “세계미술 속에서 한국의 국가적 특수성을 강조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외국 모델을 무분별하게 들여오기보다는 국립현대미술관만의 새로운 모습을 창조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 생산자로서의 미술관도 강조했다.
“임기 동안 최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콘테이너가 아니라 생산자로서의 미술관을 구축할 겁니다. 미술관 관람객이나 이용자들도 단지 우리 콘텐츠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주체로 보고 ‘교육하는 미술관’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요즘 미술관은 이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MACBA 관장 때 전시 작품의 정치성 논란으로 큐레이터들을 해고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며 “언제나 미술가들의 동반자로 일하며 어떤 검열에도 반대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킬 것”이라고 해명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 관장으로서의 한계를 의식한 듯 “1년 안에 완벽한 한국어는 아니더라도 작가나 많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준으로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약속했다.‘미술계의 히딩크’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에 대해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과 비교하는 얘기는 들어봤다”면서도 “예술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닙니다. 참 잘했다는 느낌이 중요합니다. 한국을 떠날 때 관장으로 기억되지 못해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나 프로그램이 훌륭했다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으면 합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