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철 이사장의 '원격의료 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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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원격의료사업이 10년째 영리병원이라는 기우에 사로잡혀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10년째 시범사업만 반복
노무현 정부 때보다 뒷걸음
야당 '역지사지'로 문제 풀어야
이지현 중소기업부 기자
며칠 전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성 이사장은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 E-헬스소위원회위원장을 맡았다. E-헬스는 원격의료의 다른 이름이다. 당시 의료산업선진화위원장은 이해찬·한명숙 총리가 차례로 맡아 의료산업 육성을 지원했다.10년 전 위원회는 ‘대한민국에 의료서비스는 있지만 의료서비스산업은 없다. 의료서비스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육성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성 이사장은 서울대병원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의료를 세계로’라는 비전을 발표하며 의료 한류의 기틀을 닦았다. 성 이사장은 “중공업, 정보기술(IT) 산업 등의 후속 성장동력으로 의료서비스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게 위원회의 결론이었다”며 “최근 의료서비스를 둘러싼 논란을 보고 있으면 당시 논의가 오히려 지금보다 앞서 나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때 뿌린 씨앗들은 최근 일부 결실을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아랍에미리트(UAE) 병원을 위탁 운영하고 분당서울대병원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의료 IT 시스템을 수출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됐다.
하지만 유독 원격의료사업만은 제자리걸음이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의료를 포함해야 하는지를 두고도 논쟁이 한창이다성 이사장은 2002년 분당서울대병원 초대 원장을 맡아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초안을 잡았다. 그는 “원격의료 도입으로 대형 병원에 환자가 쏠리고 의료가 영리화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라고 지적했다. 2000년대 후반 병원은 시범사업을 통해 지역 실버타운 당뇨 환자 30명을 뽑아 매일 혈당 수치 등을 병원으로 보내도록 했다. 약을 처방받으러 병원을 찾는 환자의 불편을 줄이고 혈당 관리를 좀 더 효과적으로 한다는 취지였다. 실버타운 1층의 가정의학과 의원이 환자들을 중간에서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원격의료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동네의원과의 상생 모델을 만든 것이다.
성 이사장은 “10년 전과 바뀐 것은 정책을 주도했던 사람들뿐인데 원격의료서비스를 두고 여전히 다툼만 벌이고 있다”며 “야당은 역지사지로 원격의료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 논쟁에 갇혀 제자리만 맴도는 의료서비스 관련 제도를 바라보는 의료계 원로의 진심 어린 충고다.
이지현 중소기업부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