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타임즈의 확대경] 자동차로 들어온 LPG, 그 질긴 역사

르노삼성이 LPG 차량용으로 개발한 도넛형 탱크
액화석유가스(LPG)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이 쓰는 수송용 화석연료다. LPG를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두 명 있다. 1873년 미국에서 태어난 투자가 프랭크 필립스와 비슷한 시기인 1880년 출생한 화학자 월터 O 스넬링이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조지 워싱턴대 등에서 화학을 공부한 스넬링은 1910년 휘발유보다 탄소 배출이 적은 프로판의 존재를 확인한 뒤 액상화에 성공했다. 당시 그의 발견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그해 3월31일자 신문에서 “쇠로 만든 통에 연료를 담아 일반 가정에 3주면 도달할 수 있게 됐다”는 논평을 싣기도 했다. 스넬링은 LPG의 상업화를 위해 ‘아메리칸 가솔(Gasol)컴퍼니’를 설립했다.
하지만 초기 LPG 판매는 부진했다. 이미 휘발유와 경유 등이 수송연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데다 당시만 해도 탄소 배출 감축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LPG의 가능성을 내다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프랭크 필립스다. 필립스는 5만달러에 스넬링의 프로판 액상화 특허를 구입한 뒤 필립스석유를 설립했고, 전문 LPG 제조사로 키워나갔다.

당시 미국 내 LPG 수요는 조금씩 늘어갔는데, 특히 휘발유와 동일한 연료 특성이 알려지면서 1928년 수송용 트럭에 처음 사용되는 등 난방·취사용에서 수송용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1950년에는 미국 시카고 교통국이 대중버스에 LPG 사용을 허용하면서 1000여대의 LPG 버스가 운행에 들어갔다.또 밀워키에서는 270대의 택시가 LPG로 전환돼 LPG 자동차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1965년 쉐보레가 상용차에 네 가지 LPG 전용 엔진을 탑재하면서 자동차회사도 LPG 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한국이 자동차에 LPG 사용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지만 부분적으로 의무화한 때는 1970년이다. 당시 교통부는 불법으로 개조해 운행하던 400여대의 LPG차 외에 사업용과 자가용에 필요한 부품 양산 체제를 확립해 LPG 연료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부품 양산이 잘 이뤄지지 않아 개조 비용이 꽤 비쌌다.

그러다 1974년 석유파동으로 휘발유 가격이 오르자 일부 부품만 바꿔 몰래 LPG 엔진으로 개조하는 일이 빈번했고, 그중에는 택시가 적지 않았다. 1975년 서울 시내 1만1412대의 택시 중 무려 4018대가 LPG 엔진으로 무단 변경했을 만큼 저렴한 LPG에 대한 유혹이 강했다.1980년 운수업계는 LPG 택시 증차를 정부에 적극 요구했다. 때마침 국내 LPG 생산이 늘어 LPG가 남아돌자 정부도 연간 2000대의 LPG 택시를 허용했고, 이때부터 LPG는 택시 연료로 지위를 넓혔다. 이후 LPG는 렌터카,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의 수송용 연료로도 허용되며 지금에 이르렀다.

최근 국회가 2017년부터 LPG 사용을 넓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5년 이상 지난 LPG 렌터카와 택시를 일반 소비자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LPG업계는 반기지만 정유업계는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는다. 늘어나는 LPG는 곧 휘발유의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결국 수송은 정책적으로 어떤 에너지를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자동차회사는 연료에 맞는 이동수단 개발에만 매진할 뿐이니 말이다.

권용주 < 오토타임즈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