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순·오승윤·전광영·곽훈…대가들이 펼치는 '색채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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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갤러리, 4일부터 '한국 현대미술 탐색전'…유명화가 20여명 30점 선봬할리우드 액션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은 지난해 12월3~6일 미국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아트페어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한지화가 전광영 화백(71)의 근작 ‘스타’와 ‘집합’ 두 점을 29만달러(약 3억4000만원)에 구입해 화제를 모았다. 외국 유명 스타가 국내 화가의 작품을 산 게 이례적인 데다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국제무대에 알렸기 때문이다.
전 화백 작품 ‘집합’시리즈는 삼각형의 스티로폼을 고서(古書) 한지로 싼 뒤 이를 캔버스에 일일이 붙여 조형화한 게 특징이다. 채석장의 화강암 같기도 하고 노인의 주름진 피부 같기도 한 화면은 삶의 무수한 질곡을 상징하는 듯하다.전 화백의 ‘집합’을 비롯해 임직순 변시지 오승윤 김훈 민경갑 이왈종 황영성 곽훈 김병종 김정수 구자동 등 국내 현대미술 작가 20여명의 작품 30여점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가 병신년(丙申年) 첫 전시로 4~19일 여는 ‘한국 현대미술 탐색전’이다. 작고한 작가는 물론 중견·신진 작가도 참여한다.
1970년 이후 현대미술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경제개발 초기에 작가마다 창의적 도전을 시도했던 작품부터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든 1980년대 이후 최근 작품까지 소개된다. 한국 현대미술의 트렌드와 위상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다.출품작은 풍경화, 누드화, 채색화, 사진보다 더 정교한 극사실주의 회화, 색채추상화, 정물화 등으로 한국 미술의 프리즘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꽃과 소녀의 화가’로 잘 알려진 임직순 화백(1921~1996)의 1972년작 풍경화는 무등산의 겨울 정취를 붓끝으로 차지게 녹여냈다. 증심사 인근 눈 덮인 초가집을 중심으로 무등산의 웅장한 모습을 빛에 따라 수없이 변화하는 색깔로 잡아낸 게 이채롭다. ‘자연이 보여주는 어느 순간의 색이 아니라 본질적인 색을 찾고 싶다’는 임 화백의 조형론을 실감할 수 있다.
‘오방색의 대가’ 오승윤 화백(1939~2006)의 1977년작 추상화는 부드러운 능선, 조그만 집, 나무와 물고기, 새, 꽃 등 자연 속에서 택한 소재들을 파랑, 빨강, 노랑, 하양, 검정의 다섯 가지 색으로 응축해 냈다. 오방색의 화려함을 드러내면서도 기품·격조가 묻어나와 그야말로 색깔들의 잔치마당처럼 보인다.제주도에서 한평생 붓질하며 살다 간 변시지 화백(1926~2013)이 제주의 바다와 바람, 초가집, 조랑말, 나무, 새 등을 소재로 활용한 작품 두 점도 걸린다. 화면 전반에 황토색 기운을 퍼트리면서 사물의 테두리를 먹선으로 구사해 인간의 고독한 삶을 형상화했다. 사람을 묘사하지 않아도 실제로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통영의 화가’ 전혁림 화백 작품도 나온다. 특유의 무정형 형상과 즉흥적 필치로 마구 짜낸 물감으로 거칠게 찍어 바른 작품에서는 시공을 초월한 동양적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느낄 수 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화구 앞에 앉아 붓질하는 민경갑 화백의 산수화, 우주의 에너지를 붓끝으로 잡아낸 곽훈의 추상화, 화려한 색면으로 인간적 우수를 담은 유희영의 작품, 유년 시절 도시에 대한 동경과 추억을 묘사한 황영성의 작품, 수묵단색화로 유명한 이강소의 작품, 50대 스타작가 김정수의 ‘진달래꽃’ 등도 눈길을 끈다.인재희 한경갤러리 큐레이터는 “1970년대 이후 한국 화단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회”라며 “단순한 상업 전시보다는 예술을 통해 시대정신을 표출하는 마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