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400주기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올해 타계 400주기를 맞은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두 사람의 인생에는 공통점이 많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고생, 파란만장한 삶, 죽은 뒤에 더 유명해진 이름, 같은 날 나란히 세상을 떠난 점 등이 비슷하다. 생애의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까지 닮았다.

셰익스피어는 1564년 잉글랜드 중부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일은 알려지지 않았고 4월26일의 유아세례 기록만 남아 있다. 아버지가 가죽제품 공장을 운영하는 중산층이었으나 곧 몰락했다. 그 바람에 13세 때 학업을 중단했다. 20대 중반에 런던으로 진출해 30대에 극작가로 이름을 얻기까지 숱한 고생을 했다. 이후 52세에 타계할 때까지 37편의 작품을 썼지만 그의 전작이 온전히 출간된 것은 죽은 지 7년 뒤였다.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보다 17년 앞선 1547년 9월29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났다.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해 전 재산을 차압당했다. 소년 세르반테스는 떠돌이 신세가 됐다. 군에 자원해 여러 전장을 전전했지만 레판토 해전에서 왼손을 다쳐 평생 외팔이로 지냈다. 그의 대표작 돈키호테는 57세 때인 1605년에야 빛을 봤다.

이렇듯 비슷한 삶의 궤적과 달리 작품 주인공의 성격은 거의 반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우유부단과 비극의 대명사이지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저돌적인 행동과 유머의 상징이다. 12세기 덴마크 왕가의 복수극과 17세기 스페인 촌부의 해학극은 4세기가 지난 지금도 인간유형의 양극단을 대변한다.

인간 유형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나눈 것은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이지만, 우리 모두 그중 하나이거나 중간 지점에 있다. 요즘은 우물쭈물 망설이는 선택장애, 결정장애 등 햄릿 증후군을 ‘메이비(maybe) 세대’ ‘글쎄요족’으로도 부른다. 지나친 의존증에서 벗어나 키호티즘(Quixotism=돈키호테적 태도)을 되찾으라는 조언도 자주 들린다.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1616년 4월23일, 같은 날 생을 마감했다. 유네스코가 이날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세계 곳곳에서 두 사람의 기념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 기념주화까지 나올 모양이다. 한국에서도 연극 뮤지컬 무용 출판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들썩이고 있다. “햇빛이 비치는 동안에 건초를 만들자”는 세르반테스의 명구도 1년 내내 회자될 전망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