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미국경제학회] "미국경제 V자 회복 못한 것은 필요한 개혁 안했기 때문"

미국 경제 석학들 '장기 저성장 탈출' 토론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 "규제 더 풀고 통상장벽 낮춰야"

▶스탠리 피셔 Fed 부의장 "양적 완화가 경제회복 앞당겨"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소비 살리는 세제개혁이 우선"

▶블랑샤르 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80년대식 통화정책 안 통한다"
미국경제학회(AEA) 연차총회에 참석한 경제 석학들은 미국의 경제 회복세가 아직 미약하다며 장기 저성장의 고리를 끊고 경제 회복과 재성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흘 일정으로 3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막한 AEA 연차총회에는 미국 내 200여개 경제학회 소속 학자 2000여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연차총회 메인 행사로 이날 열린 ‘미국 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 세션 참석자들은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금융통화 및 재정정책에 관해서는 학문적 견해에 따라 각기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 주최 ‘미국 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 세션에 참석한 석학들이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스탠리 피셔 미국 중앙은행(Fed) 부의장,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박수진 특파원
◆구조개혁 필요성 한목소리금융통화정책 이론인 ‘테일러 준칙’을 고안한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날 ‘미국이 다시 경제 회복을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미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과거와 같은 ‘V’자형 회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에 필요한 개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테일러 준칙은 적정한 통화량의 규모를 금리,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등 몇 가지 변수를 대입해 공식처럼 계산해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테일러 교수는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당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구조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일러 교수는 “일각에서는 미국이 구조개혁을 하기에 이미 늦었다는 회의론이 있다”며 “경제 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은 그 같은 회의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미국 경제가 바닥에 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세제 개혁과 규제 완화, 금융개혁, 더 개방적인 통상 정책 같은 구조개혁을 성공시킨다면 미국은 이전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개혁’의 시급성에 공감했다. 그러나 방향이 달랐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를 통해 금융회사와 대기업의 재무제표가 정상화됐지만 경제 회복을 위해 정작 필요한 기업 투자와 개인 소비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며 “총수요를 살리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인세율 인상과 부동산 거래 및 상속세 인상, 개인소득세 누진율 강화 등의 세제 개혁이 경제 회복의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용-물가 상관관계’ 논쟁도

미국 중앙은행(Fed)의 2인자인 스탠리 피셔 부의장은 ‘중앙은행 그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노동시장 상황이 나아지고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로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최근 금리를 인상했다”고 말했다. 초저금리와 채권 매입 등을 통한 양적 완화 정책이 소득 불평등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에 대해 에둘러 정책 효과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만약 경제 전반에 걸쳐 자산이 지나치게 고평가된 것으로 여겨진다면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적절한 조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피어슨 국제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전 국제통화기금 수석이코노미스트)은 ‘미국의 향후 거시경제정책’ 주제발표를 통해 “미국 경제에서 필립스 곡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최근 기울기가 낮아지고 표준편차가 커지는 등 예전과 같은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는 향후 미국 통화정책에 큰 도전과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실업률과 물가 간의 상관관계(실업률이 떨어지면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가 1980년대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에 Fed가 과거와 같은 인식 아래 통화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Fed가 고용 개선을 근거로 인플레이션을 기대하고 금리 인상에 나선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고 해석했다. 블랑샤르는 Fed가 금리 인상에 나서기보다 총수요를 진작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목표를 현재의 2%에서 4%로 올려 잡고 더 적극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샌프란시스코=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