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스포츠경기장, 민간투자 '물꼬'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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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산업진흥법 8년 만에 개정“돈도 안되는 축구장 관리에만 한 해 수십억원씩 쏟아붓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누가 좀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수익사업 규제가 너무 많아 민간자본 유치는 꿈도 못 꾸고 있습니다.”
프로야구·축구 등 홈구장, 임대 기간 25년까지 늘려
경기장 내 부대시설 운영…안정적 수익 사업 가능
지자체 '밑 빠진 독'에서 '돈 버는 효자' 변신 기대
민간 자본과 결합한 새 구단 창단 활기 띨듯
지난해 만난 한 지방자치단체 문화체육국장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전국 스포츠경기장의 적자 운영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월드컵 등 주요 국가 체육행사를 치르기 위해 국내 17개 광역자치단체에 건설한 1만석 이상 경기장은 총 93개. 종합경기장이 73개, 야구 전용 경기장과 축구 전용 월드컵경기장이 각각 12개와 8개다. 2008~2012년 이들 경기장의 누적 적자는 3761억여원. ‘밑 빠진 독에 세금 붓기’란 오명에 시달려왔다.‘애물단지’로 전락한 지자체의 대형 공공 스포츠시설 활용에 올해부터는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민간투자 촉진을 위한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새 개정안은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25년까지 장기 임대 가능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경기장 임대기간이다. 최대 25년으로 기존 ‘최장 5년’의 다섯 배나 된다. 민간투자자가 장기적인 투자계획을 바탕으로 수익사업을 안정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칙칙했던 공공시설의 매점 대신 유명 카페와 패밀리레스토랑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운영할 근거가 마련된 셈. 낙후된 경기장 시설도 구단이 직접 개·보수할 있도록 허용됐다.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지자체는 25년 장기임대를 통해 프로구단을 유치할 수 있고, 민간자본은 그 기간에 경기장을 활용한 각종 수익사업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며 “기존 경기장이 메이저리그나 유럽 프로축구 경기장처럼 화려하게 재탄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에서 경기장 사용을 허가받은 주체가 구단이나 전문회사 등 제3자에 재임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지난해 개장한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는 모기업(기아자동차) 자본으로 지었지만 소유주는 광주광역시다. 현행법상 실제 운영자인 KIA 타이거즈 구단은 제3자로 분류돼 운영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법 개정에 따라 기아차는 구단에 야구장 임대 권리를 넘겨 운영 주체가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간자본과 결합한 형태의 신생구단 창단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법 개정으로 투자자가 시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된 데다 시민형 프로구단 창단 때 지자체나 공기업 등의 출자 또는 출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개정된 법에는 지자체가 구단 운영에 드는 경비 등을 보조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한남희 한국스포츠산업협회 부회장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온 지자체 경기장이 민간자본과 결합한 프로구단 창단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법적 기틀이 마련됐다”며 “장기임대한 경기장이 프로스포츠 활성화와 더불어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다면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풍부해질 스포츠산업 시장 정보
개정된 법은 영세한 스포츠 관련 기업을 키우기 위한 정보 제공 의무화 등의 근거도 마련했다. 앞으로 정부는 정보력이 부족한 스포츠산업체들이 요청하면 시장 실태조사와 각종 통계자료 등을 제공해야 한다.스포츠산업 관련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해 각종 교육 사업과 국내외 인턴십 파견 사업도 확대 시행한다. 문체부는 올 상반기 중 청년 및 소상공인 창업, 업종 변경 등 참여 형태별로 다양한 세부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문체부는 또 스포츠산업 관련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전담기관을 운영할 방침이다.
같은 날 국회를 통과한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안은 지방자치단체가 시·도의 체육회와 생활체육회, 장애인체육회 등 체육단체에 운영비를 직접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지자체가 법령의 명시적인 근거가 없는 경우 각 단체에 사업비를 제외한 운영비를 지원할 수 없었다.
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