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사장 공백…인천공항, 예고된 '수하물 먹통'

승객 짐 5200개 지각운송…흔들리는 '1위 공항'

원인규명 못한 채 책임공방
공사 "비규격 수하물로 오류…운영인력 충분히 배치 못해"
항공사는 손해배상 청구 검토

잦은 수장 사퇴…화 불러
정권 보은인사로 앉은 사장들, 선거판 뛰어들며 경영 공백
발전전략 못 세워 입지 '흔들'
인천공항의 수하물 처리 기능이 정상화된 5일 여행객들이 짐을 부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공항이 사상 초유의 ‘수하물 실종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상 최다 이용객(17만6432명)이 몰린 지난 3일 수하물처리시스템(BHS) 오작동으로 159편의 항공기가 5200여개의 여행객 수하물을 싣지 못하고 출발한 것이다. 승객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인천공항공사는 사고가 난 지 3일이 지났지만 정확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환승률이 떨어지면서 중국 싱가포르 공항들에 추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악재다. 이번 사태로 글로벌 허브공항으로서의 입지가 더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항공기에 싣지 못한 수하물은 5200여개로 여행객 1인당 평균 1.03개의 수하물을 부치는 것을 감안하면 약 5000명이 도착지에서 여행가방을 찾지 못한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항공사들은 다른 항공편을 이용해 뒤늦게 수하물을 나르고 있다. 그나마 매일 운항하는 노선은 이날 짐 처리를 완료했지만, 주 2~3회 운항하는 노선은 항공편이 없어 아직까지 일부 짐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인천공항공사는 사고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수하물 실종 사태를 놓고 항공사들과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5일 “출국 여행객이 8만7365명으로 개항 이래 가장 많았던 데다 박스·비닐포장 등 비규격 수하물이 많아 센서가 오작동하면서 수작업을 할 수밖에 없어 출발 지연 및 수하물 누락 사태가 발생했다”며 “사상 최대 여객에 대비해 운영인력을 사전에 충분히 배치하지 못한 점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항공사들은 이번 사고는 인천공항에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매년 가끔 수하물 운반벨트에서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켰음에도 공사 측은 원인 파악을 하지 않았다”며 “또 사고 당일에는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항공사와 지상조업사들은 더욱 혼란스러웠다”고 지적했다.당장 다가오는 설 연휴에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휴 마지막 날인 내달 10일에는 17만7000여명이 인천공항을 이용할 예정이다.

이번 사태로 그동안 인천공항이 받아온 찬사가 무색해졌다. 인천공항은 2005년 개항 이래 10년 연속 세계 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출국 전 과정 자동화서비스’로 정부3.0 정책 우수사례로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는 인천공항이 그동안 찬사에 취해 발전전략을 제때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천공항이 제2터미널공사 등 3단계 공사를 내년 말까지 완공하겠다고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장 여객·수하물 급증에 따른 시스템 개편 등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상 초유의 수하물 실종 사태가 최근 잦은 사장 공백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 들어 2013년 6월 임명된 정창수 전 사장은 취임 9개월 만에 강원지사 출마를 위해 사표를 냈고, 이후 7개월간 인천공항공사 사장 자리는 비어 있었다. 경영 공백이 생긴 이 기간에 인천공항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면세점, 은행, 식음료 매장 등 시설 입찰이 6개월이나 지연되면서 공항 수입 감소는 물론 공항 이용객은 가판대 같은 면세점과 편의시설을 이용해야 했다.2014년 10월 창원시장을 지낸 박완수 전 사장이 취임했지만 이렇다 할 발전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결국 1년2개월 만에 총선 출마를 위해 또다시 사표를 냈다.

약 10개월 만에 두 차례나 수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글로벌 허브공항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렸다. 허브공항의 잣대인 환승률은 2013년 18.7%를 정점으로 지난해 11월에는 15.2%까지 떨어졌고, 인천공항이 독보적 1위였던 공항서비스평가에서도 중국 베이징 서우두공항, 상하이 푸둥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이 턱밑까지 쫓아왔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공항 경영과 무관한 인사가 수장 자리에 앉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이 인천공항을 그저 거쳐가는 자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인천공항공사가 정권의 ‘낙하산 놀이터’로 불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백승현/인천=김인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