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밑에 지하실 있다더니…국제 유가 끝모를 추락

브렌트유도 11년만에 35달러 붕괴

OPEC 이란 대표 "이란-사우디아리비아 분쟁
국제 원유시장 최대 위협…감산 논의 사실상 불가능"

미국 휘발유 재고량 급증…중국 경제 둔화도 한몫

WTI도 장중 32달러에 거래…2003년 12월 이후 최저
2014년 중순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대에 거래되던 국제 유가가 한없이 떨어지고 있다. 미국계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가 지난해 가을 유가가 연내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을 때, 지나치게 극단적인 전망이라고 본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골드만삭스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배럴당 20달러대’ 유가는 현실이 됐다. 7일 시장에서 두바이유 현물은 배럴당 29달러 선에 거래됐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좋아 조금 더 비싸게 거래되는 브렌트유나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도 지난 6일 배럴당 35달러 아래로 추락한 데 이어 30달러까지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브렌트유(2월 인도분 선물 기준)는 이날 런던 ICE거래소에서 배럴당 32.16달러(오후 5시 기준)에 거래됐다. 전날보다 6% 가격이 빠졌다. WTI(2월 인도분 선물)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전날보다 5.5% 내린 배럴당 32.10달러에 거래됐다. 2003년 12월29일 이후 장중 최저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본계 금융회사 노무라홀딩스는 이날 브렌트유 가격이 앞으로 10일 이내에 배럴당 30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위스계 투자은행(IB) UBS그룹은 30달러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만간 ‘3대 원유’가 모두 20달러대에 거래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홍콩에 주재하는 고든 콴 노무라 애널리스트는 “시장거래는 탐욕(수익추구)과 공포(위험회피)에 의해 이뤄지는데, 지금은 공포가 탐욕을 압도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이날 중국 증시가 폭락해 또다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등 중국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콴 애널리스트는 “선물 가격이 현물보다 더 낮게 형성된 것은 투자자들이 위안화 평가절하 등의 소식을 ‘중국 경제가 더 나빠진다’는 신호로 해석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호주 CMC마켓의 마이클 매카시 수석시장전략가는 “중국 경제는 지난달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중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 시장 공포에 불을 지폈다”고 덧붙였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단교했다는 소식도 유가 상승 요인이 아니라 하락 요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초 이 소식이 전해진 첫날에는 유가가 상승했다. 과거 중동의 정정이 불안해지면 원유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곤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12월4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선 감산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사우디와 이란의 다툼으로 앞으로 감산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까워졌다. 메흐디 아살리 OPEC 이란 대표는 “앞으로 OPEC이 감산 논의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앞으로 국제 원유시장에 최대 위협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사우디는 저유가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이란도 그간 경제 제재를 받은 탓에 재정이 취약하다. 두 나라 다 원유 수출을 늘리는 것 외엔 달리 돈을 마련할 방안이 없다.

하루 100만배럴가량 초과공급 상태가 유지되면서 재고를 쌓아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진 것도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지난주 미국에선 휘발유 등 재고가 1690만배럴 증가했다”며 “이 기간 원유 재고는 509만배럴 감소했지만 정유 제품 증가로 인한 재고 부담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배럴당 20달러보다 더 낮은 값에 팔리는 원유도 있다. 3대 원유보다 품질이 낮은 서부캐나다원유(WCS) 현물은 7일 배럴당 19.81달러로 2008년 이후 가장 싼 값에 거래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