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들의 특별 리포트] 적절한 타이밍, 빠른 집행…일본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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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희망으로 바꾼 나라들 (4) 유흥수 주일본대사“요즘은 폭증한 외국인 관광객 때문에 방을 잡을 수 없어 (일본 내) 출장을 다니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노·사·정, 법인세 인하·임금인상 타협
기업들 2018년까지 10조엔 투자키로
FTA 늦었지만 TPP 참여는 빠르게 추진
아베노믹스는 미생…소비 회복은 더뎌
최근 만찬 자리에서 만난 한 일본 재계 인사의 엄살 섞인 불평이다.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2013년까지만 해도 1000만명을 약간 웃돌았으나 불과 2년 만인 지난해 20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최근 활기를 보이고 있는 일본 경제의 한 단면이다.일부 경제지표 수치가 크게 좋아졌다. 지난 3년간 달러 대비 40% 이상 낮아진 엔화가치 등의 영향으로 닛케이225지수는 2012년 11월 8700에서 최근 18,000 전후로 상승했다. 실업률은 1995년 이후 최저 수준인 3%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기업 수익 또한 사상 최대치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대담한 금융 완화, 기동적 재정정책, 민간 투자를 환기하는 성장 전략 등 ‘세 개의 화살’로 이뤄진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의 성과”로 자평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를 비판하는 이들도 일본 정부가 적절한 시기에 속도감 있게 정책을 추진해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아베노믹스를 ‘미생(未生)’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만만치 않다. 엔화가치가 크게 낮아졌지만 수출 회복은 여전히 더디다. 엔저(低)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은 중산층과 서민층 가계에 부담이 돼 소비회복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日정부가 나서 재계·노동계 설득…노동개혁 이끌어내”
일본 기업 또한 사상 최대의 수익을 거두고 있으나 여전히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일본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분기에 전기 대비 -0.1%, 3분기에도 0.3%로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물가 또한 일본은행의 2% 상승 목표에 턱없이 못 미치는 0%에 가까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저출산과 고령화, 재정건전성 악화 등 일본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적 리스크도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아베 정부는 2020년까지 명목 국내총생산(GDP) 600조엔 달성, 출산율 1.8명 수준 회복, 늙은 부모의 병수발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간병이직 제로(0)’ 달성 등 사회보장 확충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 개의 화살’을 급하게 쏘아 올렸으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의 시각이 적지 않다.
종합해보면 아베노믹스는 아직 진행형이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의 성패 여부를 떠나 비판론자들조차 아베 정부 들어 ‘이전과는 달라진 무엇’이 있음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먼저 정책결정 과정이 늦고 기존 정책과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던 일본 정부가 과거의 틀을 깨고 정책을 과감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뒤처져 있던 일본이 2015년 10월 미국과 함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타결을 견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일본 정부가 TPP 참여를 공식화할 무렵만 해도 예전 행태대로 자유민주당 내에서는 ‘TPP 참가의 즉시철회를 요구하는 회’ 등 농림수산과 관련 있는 의원들이 TPP 참가를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2013년 3월 아베 총리는 “TPP는 경제효과뿐만 아니라 동맹국인 미국과 새로운 경제권을 구성하는 것이며, 지금이 마지막 기회로 이 기회를 놓치면 일본이 세계 무역규범을 정하는 과정에서 소외될 뿐”이라며 농림수산업계와 야당, 여당 내 저항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TPP 참여를 공식화했다.
참여가 공식화되고 난 이후에는 곧바로 아마리 아키라 TPP 협상대표 지휘 아래 정부대책본부를 꾸려 고질적인 부처 간 칸막이와 이해관계 대립을 미연에 방지하고 TPP 교섭을 일사불란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2013년 3월 참여의사를 나타낸 당시 35%에 불과하던 TPP 찬성 여론도 2015년 10월 협상타결 이후 여론조사에서는 61%로 올랐다.
각종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정치계뿐만 아니라 관료 재계 노동계 등이 자신들의 이익을 고집하지 않고 정책이 목표한 효과를 내도록 협력하는 정책 환경을 이끌어낸 것도 예전엔 볼 수 없던 변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법인세 인하, 임금 인상, 소비세 인상’을 둘러싼 노·사·정 3자 간 타협이다. 일본 정부는 2013년 2월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정노사회의(政勞使會議)’를 설치하고 기업 측에 임금을 올리도록 요청했다.
금융 완화에 따른 엔화가치 하락으로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올렸으나 임금 상승이 저조한 가운데 수입물가 상승으로 근로자 실질소득이 감소해 ‘낙수효과’에 따른 경기회복 선순환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임금은 노사교섭에 의한 것이라며 요네쿠라 히로마사 당시 게이단렌 회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노사회의에 돌파구가 생긴 것은 2014년 4월 법으로 정한 소비세 증세를 앞두고서였다. 수입물가가 오른 상태에서 소비세율이 5%에서 8%로 인상되면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경기 위축은 불가피해 보였다.
여기서 ‘기업의 임금 인상을 조건으로 법인세를 인하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기업들은 법인세 인하를 얻어내고, 근로자는 임금 인상으로 소비세 증세 부담을 완화하고, 정부는 소비세 증세 연기를 피할 수 있었다. 2014년 9월 정부와 여당은 임금 인상을 전제로 법인세 감세를 결정했고, 기업들은 지난해 임금 인상으로 화답했다.
이 같은 정책참여자 간 상생적 타협은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내고도 부진이 지속되던 설비투자 촉진을 위한 해법 찾기에서도 발휘됐다. 2015년 10월 기업의 설비투자를 독려하기 위한 ‘관민대화’가 설치됐고, 이 회의에서 정부가 법인세 인하 시기를 앞당기기로 한 데 대해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렌 회장은 재계의 뜻을 모아 2018년까지 3년간 10조엔 규모의 추가 설비투자 의향을 밝혔다.
이런 변화가 본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달라진 모습이 모처럼 경제 회생의 계기를 마련한 일본 경제에 중요한 추진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제조업을 중시하는 산업 구조이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많이 닮은 우리로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겪은 장기불황, 디플레이션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유흥수 주일본대사 hsyoo37@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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