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도시경쟁력이다] 마임·인형극·애니…문화예술축제의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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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춘천 '축제 불패'의 도시1989년 강원 춘천에서 두 가지 문화예술축제가 출범했다. 그해 5월 말 한국을 대표하는 마이미스트 유진규 등 여섯 명의 예술가가 춘천MBC 극장에서 관객 100여명을 모아놓고 시작한 마임축제와 9월 말 문화예술계 인사들 주도로 춘천어린이회관에서 막을 올린 인형극제였다. 인형극제 개막을 앞둔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1호 문화기획자’로 꼽히는 강준혁 전 성공회대 교수(1947~2014)는 이렇게 말했다.
굴뚝산업 대신 문화에 눈돌려 20여개 축제 키워
축제와 문화산업 연계…지역경제 활성화 이끌어
“춘천은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좋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도시입니다. 인구 21만명의 중소도시여서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축제를 열기에 적격이지요.”춘천인형극제를 기획한 강 교수는 “영국 에든버러연극제, 프랑스 칸영화제 등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세계적 문화축제가 많다”며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화 콘텐츠를 춘천에서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축제의 도시’ 춘천의 첫걸음이었다.◆마임·인형극제, 세계적인 문화축제로
해마다 춘천에서는 20여종의 크고작은 문화예술축제가 열린다. 마임축제, 인형극제를 비롯해 고음악제, 국제연극제, 봄내예술제, 강원아트페어, 김유정문학제, 생활음악인페스티벌, 애니타운페스티벌 등 독특하고 다양한 문화축제가 3월부터 10월까지 줄을 잇는다. 열리는 축제마다 대부분 성공을 거둬 춘천은 ‘축제 불패(不敗)’의 도시로 불린다.춘천시는 1980년대 후반까지 도시의 독립적인 경제 기반을 모색했지만 ‘굴뚝형 산업’을 유치할 수 없었다. 그린벨트와 수도권 상수원 보호 등 규제 때문이었다. 춘천시가 “남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것을 해보자”며 문화와 관광으로 눈을 돌린 까닭이다. 춘천시는 지역 예술인들과 힘을 합쳐 문화예술축제를 적극 기획하고 유치했다.
마임축제와 인형극제는 ‘국제’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았는데도 예술성과 축제성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인 문화축제로 성장했다. 춘천마임축제는 영국 런던마임축제, 프랑스 미모스마임축제와 함께 세계 3대 마임축제로 꼽힌다. 지난해 열린 축제에는 해외 10개국, 13개 단체를 비롯해 500여명의 마이미스트가 거리와 극장에서 다양한 마임 공연을 펼쳤다.
도심에서 시민들이 거리 마임 공연을 보며 물놀이를 즐기는 ‘아수라장’은 춘천의 명물이 됐다. 지난해 축제 관람객은 13만6000여명에 달했고 이에 따른 지역 경제유발효과는 약 70억원으로 추산됐다.춘천인형극제는 아시아 최대 규모 인형극제로 자리잡았다. 2001년에는 국내 유일의 인형극 전문극장인 춘천인형극장이 건립됐다. 지난해 8월 엿새간 열린 축제에 관람객 9만여명이 모였다. 6개 해외 극단을 포함해 70개 단체에서 참가한 예술가만 1000명이 넘었다.
춘천이 문화축제 도시로 성공한 가장 큰 요인은 접근성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다.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심에서 하루 이틀 벗어나 자연과 문화를 마음껏 즐기기에 춘천만한 곳이 없다”며 “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문화예술인들의 노력,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가 등이 어우러져 춘천을 축제의 도시로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축제로 지역문화산업 발전까지춘천시는 문화예술축제를 지역 문화산업의 산실로 활용하고 있다. 1997년 춘천만화축제로 출발한 춘천애니타운페스티벌(CAF)이 대표적인 사례다. CAF에선 야외 영화제와 캐릭터 공연, 전시회 등 일반 행사와 함께 전문업체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비즈니스 매칭 행사가 열린다.
지역 애니메이션업체인 DPS는 자체 제작한 국산 애니메이션 ‘구름빵’을 CAF에서 발표하고 해외투자협약을 맺어 핀란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10여개국에 수출했다. DPS는 지난해 CAF에 춘천시와 공동 제작한 창작애니메이션 ‘꽉잡아’를 발표했다. 춘천 곳곳의 명소를 배경으로 춘천기계공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으로,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유료로 판매할 계획이다.
홍순연 춘천시 문화예술과장은 “춘천은 춘천인형극제, 소양강처녀가요제, 막국수닭갈비축제 등 공연예술부터 관광·레저와 먹거리를 아우르는 다양한 축제가 연중 열리는 도시”라며 “축제가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늘리고, 외지 방문객을 대규모로 유치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