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동의 빵집이야기] 빵엔 저작권이 없다…소금량 2% 법칙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있는 <데조로의 집>. 이 빵집 이장권 오너 셰프는 "빵에는 규칙이 없다.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법칙"이라고 말했다. / 사진=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밥 대신 빵. 우리는 지금 '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변엔 빵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직접 빵집을 차리겠다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빵집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어떤 빵집을 어떻게 차려야 할 지 궁금한 게 많다. 셰프만의 개성으로 '골리앗'을 넘어뜨린 전국 방방곳곳 '작은 빵집' 사장님들의 성공 방정식. [노정동의 빵집이야기]에서 그 성공 법칙을 소개한다.

#. "기본은 바게뜨다. 밀가루 1kg당 소금의 양이 20g을 넘지 않아야 한다(실제 '바게뜨'는 그래야 한다). 한국인은 질긴 식감보다 말랑말랑한 느낌을 좋아하니 프랑스 전통 밀가루 대신 우리밀을 써보자. 소재는 블루베리. 수확 철을 감안해 만들 수 있는 시기를 조절하자. 크림치즈를 입혀 당도를 낮추고 풍미를 더하면…"2013년 가을 어느 날 '데조로의 집' 이장권 오너셰프(42·사진)는 새로 지은 아파트들로 빼곡한 경기도 판교 삼평동 인근 상가 작업실에서 신메뉴 개발에 몰두했다. 곧 있을 매장 오픈을 위한 준비였다. 처음부터 타깃은 분명했다. 빵에 대해선 전문가 못지 않은 20~30대 여성들이 아닌 노인과 아이들을 위한 빵이 목표였다.

그해 겨울 오픈 후 매장엔 오히려 20~30대 여성들이 몰렸다. 평소에 빵을 잘 먹지 않는 그들의 남편, 아이들, 부모를 위한 빵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들 자신을 위한 빵 구매는 덤이었다. 무엇이 '엄마'들의 발걸음을 빵집으로 이끌었을까.
"아이들과 노인들이 습관적으로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죠. 우리나라도 이제 밥 대신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잖아요. 이른바 '데일리 브레드(daily bread)'죠. 간식으로 먹는 빵과 매일 먹게 되는 빵은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엄마들이 밥상에 밥 대신 빵을 올려놓게 하자는 것이 첫번째 포인트입니다."'습관적으로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그가 제일 먼저 주목한 건 밀가루다. 바게뜨를 기본으로 삼고 싶었지만 특유의 '딱딱한' 식감이 문제였다. 찰진 쌀밥 대용으로 질긴 바게뜨를 택할 소비자는 많지 않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프랑스 본토 밀가루 대신 그가 택한 건 우리밀과 100% 천연 효모 발효종으로 만든 바게뜨다. 천연 효모종으로 만든 빵은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는 대신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된다.

두번째는 식재료다. 노인들과 아이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메마른 빵"이어선 안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편하게 대하는 식재료 중 하나인 감자가 그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수미감자는 일반감자보다 전분함량이 많아 특유의 고소함이 있다는 게 이 셰프의 설명이다. 블루베리와 살구에도 주목했다. 밥을 대신 할 수 있으려면 충분한 영양소가 포함돼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데조로의 집> 이장권 오너셰프가 바게뜨와 블루베리를 활용한 빵을 만들고 있는 모습. / 사진=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바게뜨, 치아바타 등 질기거나 단단한 종류의 빵을 메인으로 삼으면 20~30대 여성 매니아층은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빵집이 너무 많죠. 매장이 위치한 곳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서 빵을 만든다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대량 생산을 해야 하는 프랜차이즈 빵집은 할 수 없는 것이죠."

이 셰프의 매장이 있는 판교 삼평동은 비교적 '젊은 엄마'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다. '데조로의 집'이 있는 송현초교 사거리에서 판교 테크노밸리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도달한다. 인근엔 1만 세대에 이르는 아파트 대단지와 10곳의 초·중·고등학교가 밀집해있다. 삼평동 '젊은 엄마'들 대부분은 부모의 노후를 위해, 남편의 직장을 위해, 자녀의 교육을 위해 이곳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얘기했다.

물론 그의 동네엔 이 셰프 매장 말고도 빵집이 10개가 넘는다. 대기업 계열의 브랜드 빵집이 대다수고 파스타를 같이 판매하는 레스토랑식 빵집,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호텔식 빵집도 있다. 고층 아파트와 상가 사이에 끼어 있는 이 셰프의 매장보다 대로변 등 소위 '목' 좋은 곳에 있는 빵집도 대여섯 곳이다. 아무리 세대수가 많다지만 적당히 팔아선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인 셈이다."사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인 빵만 매대에 많으면 살아남기 어렵죠. 매일 먹을 수 있는 빵은 너무 달아서도 안되고 너무 밋밋해서도 안됩니다. 쌀밥 처럼 식감도 편해야 하고요. 요즘 어머니들은 빵에 대한 수준이 높아서 직접 레시피에 조언을 해주기도 합니다. 매일 빵을 사러 오다 보니 본인들이 밥 지을 때 물 계량하 듯 말씀해주시는 거지요."

동네에서 개인 베이커리를 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 궁금했다. 그는 2007년 프랑스 리옹에서 제빵 연수를 하던 당시 교훈을 떠올렸다. 이른바 소금량 2%의 법칙이다.

"프랑스에선 바게뜨를 빵집마다 다 다르게 만들어요. 레시피도 규칙도 그리고 저작권도 없죠. 밀가루 1kg(1000g)당 소금의 양이 20g만 넘지 않게 한다는 '룰'만 지키는 거죠. 그래서 '아띠장(Artisan·빵 장인 혹은 개인 베이커리를 지칭하는 프랑스 말)' 문화가 탄생한 겁니다.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세요. 고객들은 알아볼 겁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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