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김병원표 농협개혁'…선거 후유증에 발목 잡힐라

취임 준비 시작했지만 선거법 위반 논란 '뒤숭숭'

"조직개편 등 과제 많은데 개혁 동력 잃어선 안돼"
농민 조합원 235만명을 대표하는 농협중앙회가 오는 3월 새 수장의 지휘 아래 대대적인 개혁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2일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김병원 전 나주 남평농협 조합장(사진)이 개혁을 이끈다. 52년 만에 호남 출신 인사가 회장에 선출되면서 ‘김병원표(標) 개혁’에 대한 기대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자칫 선거 후유증에 발목이 잡힐 경우 취임 초 개혁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시동 거는 ‘김병원호’

21일 농협에 따르면 3월 말 농협중앙회장에 취임할 예정인 김 당선인은 최근 농협 개혁 방향을 설계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짜고 있다. 회장 당선인이 취임 두 달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전엔 기존 회장의 자리가 비어 있거나 연임한 경우가 많아 취임 준비 기간이 짧거나 아예 없었다.

김 당선인이 곧 내놓을 농협 개혁안에 농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관계자는 “지난 16년간 영남 출신 인사가 회장을 맡아오다 호남 출신이 처음으로 당선됐는데 김 당선인이 영·호남 조합원을 한꺼번에 아우를 수 있는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김 당선인은 선거운동 당시 농협법 개정을 전면에 들고 나왔다. 농협 내 상호금융을 독립 법인화해 상호금융중앙은행으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했다. 비리 근절을 위해 조직을 투명하게 만들겠다고도 강조했다. 지원조직인 중앙회가 사실상 회원조합 위에 군림하는 시스템부터 뜯어고치겠다고 했다.

김 당선인은 투표장의 대의원 앞에서 “위기에 직면한 우리 농협을 조합장과 함께 반드시 구해내겠다”고 호소했다. 그의 절실한 개혁 의지가 반대편에 섰던 대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분석이다.

그러다보니 중앙회 내부는 물론 지역조합장들 사이에서도 김 당선인에 대한 기대가 높다. 지역농협의 역할과 위상도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전남 지역조합 관계자는 “새 회장이 취임하면 중앙회와 지역 농협 간 관계가 개선될 것 같다”고 말했다.◆선거 후유증 생기나

그러나 이번 회장 선거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논란이 불거지면서 농협 분위기는 뒤숭숭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다른 후보가 김병원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정황을 문제 삼았다.

이 때문에 김 당선인의 농협 개혁이 출발부터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취임 전 준비 과정에서부터 개혁 계획을 짜지 않으면 취임 후에도 제대로 실행하기 어렵다”며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발목이 잡혀 개혁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농협과 발맞춰야 할 농림축산식품부도 난감해하고 있다.◆“농협 개혁에 차질 없어야”

논란과는 별개로 예정돼 있던 농협 개혁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복잡한 농협 사업구조 개편 마무리, 일선 조합 지원 강화, 중앙회장 선거 직선제 전환 등 김 당선인이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라는 게 농협 안팎의 여론이다. 비리 척결을 통한 조직 신뢰성 회복도 과제 중 하나다.

한 지역농협 관계자는 “김 당선인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한 번 결심한 일은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며 “235만 지역농민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