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를 '대박'으로 바꾼 일본 발뮤다의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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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대신 '기분 좋은 바람' 팝니다"지난 5년간 매출이 60배 증가한 일본 기업이 있다. 2010년 사양제품 취급을 받던 선풍기에서 ‘그린팬’이란 히트작을 내놓은 뒤 ‘에어엔진(공기청정기)’ ‘스마트히터(오일히터)’ ‘레인(가습기)’ ‘더 토스터(토스터)’ 등 내놓는 제품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직원 수 50명의 ‘일본 가전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발뮤다 얘기다. 발뮤다 고속성장의 비결을 직접 듣기 위해 최근 발뮤다 본사를 방문했다.
고교 중퇴한 데라오 사장, 2010년 파산 위기서
출시한 선풍기 '그린팬' 독특한 디자인으로 히트
"좋은 제품 개발 위해선 원가 걱정 하지 않아"
2009년 매출 4억5천만원, 5년만에 270억…60배 성장
‘일본 가전업계의 애플’도쿄 도심에서 서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도쿄도 무사시노시(市). 3층짜리 발뮤다 본사 건물엔 변변한 간판 하나 없었다. 현관문 유리에 발뮤다(BALMUDA)라고 쓰인 시트지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건물 2층에 있는 사무실엔 부서 구분도, 사장실도 따로 없었다. 직원 수에 비해 좀 휑할 정도로 여유 있는 공간이었다. 데라오 겐 사장(43)은 잠시 기다려 달라는 눈짓을 하고는 하던 일을 마치고 탁자로 왔다. 찾아온 손님에게 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친절한 ‘보통의’ 일본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데라오 사장은 17세에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 등 지중해 연안을 여행했다. 귀국 후 로커로 활동하다가 2003년 발뮤다디자인(2011년 발뮤다로 회사명 변경)을 설립했다. 데라오 사장은 스스로를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는 20대 후반 음악 활동을 접으면서 기타 대신 공구를 들었다. 사업을 통해서도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꼭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발뮤다는 설립 초기에 PC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첫 제품은 한 개에 3만5000엔(약 35만원) 하는 알루미늄 재질의 노트북 거치대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주문이 뚝 끊겼다. 이듬해인 2009년 매출 4500만엔에 순손실 1400만엔을 기록했다. 빚만 3000만엔이 있었다. 곧 문을 닫을 판이었다.
파산 직전에 몰리자 데라오 사장은 ‘이렇게 무너져 버릴 거라면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마음에 두고 있던 선풍기를 내놓기로 했다. 왜 사양제품이나 다름없는 선풍기였는 지 궁금했다. 그는 “시장을 보지 않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한다”고 답했다.
그가 목표로 한 것은 ‘자연 바람처럼 기분 좋은 바람을 내는 제품’이었다. 그게 선풍기였다. 14개 날개의 2중 팬 구조로 바람이 닿는 면적을 넓히고 특수 모터로 소음을 최소화했다. 3만7000엔이면 좀 비싸지 않으냐고 하자 “좋은 물건과 싼 물건은 설계부터 다르다”며 “좋은 물건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면 원가 같은 것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그린팬’을 계기로 발뮤다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드는 업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발뮤다의 연 매출은 2010회계연도에 2억5300만엔으로 훌쩍 뛰었다. 이어 가습기와 오일히터, 공기청정기를 잇달아 선보였다. 회사는 쑥쑥 커갔다. 일본 닛케이BP에 따르면 2014회계연도 매출은 26억6000만엔으로 4년 만에 10배로 급증했다.(데라오 사장은 매출과 이익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중국 샤오미는 지난해 발뮤다의 공기청정기와 거의 똑같은 제품을 중국 시장에 내놨다. 그는 “중국 시장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위협이 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혁신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고, 혁신기업은 결국 경쟁에서 이길 것이란 이유에서다. 발뮤다의 경영이념은 ‘최소로 최대를’이다. 최소한의 부품만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다는 의미다. 내놓는 제품마다 성공하면서 데라오 사장에게 ‘일본의 스티브 잡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는 “전혀 다르지만 닮은 부분도 있다”며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꿈을 그리고 그 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점이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 3대 디자인상 휩쓸어발뮤다는 제품의 기능과 성능은 특별히 내세우지 않는 편이다. 전달해야 하는 것은 ‘시원함’, ‘맛’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소비자가 제품을 보는 즐거움, 디자인을 챙긴다. 제품을 개발하면서 5명의 디자인 직원이 2000개까지 안을 낸 적도 있다. 이런 노력에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독일 ‘레드닷디자인상’, ‘iF디자인어워드’에서 잇달아 수상했다. 제품 카탈로그부터 웹사이트, 설명서, 포장 디자인까지 모두 사내에서 직접 제작한다.
발뮤다는 데라오 사장이 100% 지분을 갖고 있다. 벤처캐피털 등에서 지분 투자를 의뢰해도 아직은 거절하고 있다. 그는 “기업공개(IPO)는 2017~2018년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며 “IPO 전년이나 그해에 100억엔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라오 사장은 현재 주방용 가전제품 등 2~3종의 신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무사시노=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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