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래치야경·토끼 모양 의자…해외바이어 마음 훔친 '토종 디자인'

김낙훈의 현장속으로

세계 최대 생활용품전 '메종오브제전시회'서 '관심집중' 라고디자인·라비또
'대형서점서 인기만점' 라고디자인
에펠탑·런던타워 등 세계명소 제품화
"번 돈은 무조건 투자" 일본 법인 설립

'토끼 의자로 인기몰이' 라비또
프랑스 전시회서 하루 100여명 찾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도 관심
라고디자인의 하성용 사장(가운데)과 임직원이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자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낙훈 기자
파리 관문인 샤를드골공항 부근의 노르빌팽드전시장. 이 전시장 내 13만㎡ 규모 공간에서 지난달 22일부터 26일까지 ‘메종오브제전시회(2016 Maison&Objet)’가 열렸다. 가구 조명 그릇 인테리어 부엌용품 등이 선보이는 세계 최대 생활용품 전시회다. 전시 규모는 코엑스의 약 4배다. 전시회 주최측은 “참가 브랜드 3200여개 가운데 절반이 해외 브랜드며 참관객 8만여명의 49%가 외국에서 온 방문객”이라고 밝혔다.

진열된 제품들은 단순한 가구나 생활용품이 아니다. 미술품을 연상시킨다. 이곳은 디자인 경연장이다. 단순한 가구에서 벗어나 실내가 어떻게 예술적인 공간으로 변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유명 브랜드인 펜디, 웅가로 등이 대규모 부스를 꾸미고 전시회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핀란드 등 전통적인 디자인 강국과 미국 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평범한 디자인으론 살아남지 못한다”며 명품디자인에 사활을 걸었다.
메종오브제전에 토끼 모양 의자를 출품한 라비또의 곽미나 사장(왼쪽)이 바이어들과 상담하고 있다. 파리=김낙훈 기자
전시회의 또 다른 특징은 아이디어 제품 경연장이라는 점이다. 한국 중소기업도 이목을 끌었다. 라고디자인(사장 하성용·29)은 스크래치야경 제품으로 주목받았다. 2014년에 창업한 신생업체인 이 회사는 검은색 디자인북을 예리한 플라스틱 끝으로 긁어내면 에펠탑 런던타워 등의 야경이 나타나는 독특한 제품으로 바이어들의 관심을 모았다.

토끼 모양의 휴대폰 케이스로 알려진 라비또(사장 곽미나·34)의 부스에는 하루종일 바이어가 끊이질 않았다. 이번엔 토끼 모양 의자를 선보였다. 곽미나 대표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등 하루에 100명 정도의 바이어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자체 부스 외에도 전시장 입구 휴식공간을 자사의 토끼 의자로 채웠다. 이들 두 회사는 젊은이가 창업한 ‘디자인 중심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메종오브제에서 국내 대기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에 중소기업이 과감하게 출품해 빅바이어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김선의 프랑스국제전시협회(프로모살롱) 한국사무소장은 “메종오브제 같은 세계적 전시회는 국내 중소기업이 빅바이어를 만나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임직원 평균 27세’ 패기 넘치는 라고디자인
이 회사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임직원으로 구성된 디자인업체다. 국내에서 야경스크래치 제품을 내놓자마자 교보문고 핫트랙스의 최고 인기제품으로 등극했다. 이 여세를 몰아 이번에 메종오브제에 단독 부스를 꾸몄다.

이 회사의 하성용 사장은 “전시회 기간 프랑스와 영국의 대형 백화점, 이탈리아와 미국의 현대미술관에서 문의해올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며 “국내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한양대에서 건축공학과 전자공학을 복수전공한 그는 2014년 1월 서울 시흥동 자택에서 1인기업으로 창업했다. 야경스크래치 제품에 대한 사업을 구상하고 충무로 일대에서 발품을 팔며 어디서 어떤 재료로 만들 수 있는지 조사해 단돈 30만원을 투자, 첫 제품을 내놨다. 반응은 차가웠다. 주변 지인 모두가 ‘사업성이 없다’며 깎아내렸다. 시장분석 매출계획 등 거창한 내용을 말하며 안되는 이유만 얘기했다. “네가 무슨 사업을 한다고 그래”라는 힐난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는 확신이 있었다. 대학까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지만 졸업 후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개척하고 싶었다. 그는 “재학 중 권오경 교수님(전 한양대 부총장)의 격려가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제품을 완성했지만 이를 보관할 데가 없었다. 마침 서울시 ‘청년창업1000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옛 마포구청 자리 부근 컨테이너 일부를 쓸 수 있었다. 월 50만원씩 1년간 총 600만원의 창업자금도 지원받았다. 가뭄의 단비였다. 지마켓, 교보 핫트랙스, 텐바이텐에 연락했다. 판매가 시작됐다. 낮에는 유통업체 관계자를 만나고 저녁에는 제품을 포장했다. 컨테이너가 창고 겸 사무실이었다.번 돈으로 2014년 6월 강남구 신사동에 20㎡(약 6평)짜리 사무실 얻었다. 그 후 또다시 돈을 모아 컴퓨터 한 대를 장만했다. 작년 8월 홍대 앞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놀라운 점은 젊은 디자이너가 몰려온 것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던 미대 졸업생도 있었고 외국 대학 출신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품이 재미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다”며 합류했다.

임직원 평균 나이는 27세. 전체 임직원 20명 중 여자가 14명이다. 이들이 라고디자인의 자산이다. 젊은이들은 두려움이 없다. ‘한번 해보자’며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주요 품목은 야경 제품인 ‘스크래치 나이트뷰’(410×287㎜)로 에펠탑, 파르테논 신전, 남산타워 등 세계 명소 13곳을 제품화했다. 같은 내용을 책으로 엮은 스크래치북도 있다. 반응은 뜨겁다. 핫트랙스 관계자가 “이렇게 출시되자마자 반응이 오는 사례는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자신감을 얻은 라고디자인은 작년 8월 일본 도쿄에 법인을 설립했다. 하 사장은 “번 돈은 무조건 투자한다”며 “안정은 성장의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30세도 안된, 패기 넘치는 젊은이다.

‘삼성전자 디자이너 출신’ 여사장의 라비또

서울대 미대와 서울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곽미나 사장은 삼성전자 디자이너 출신이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독립했다. 창의적으로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끼 모양의 휴대폰 케이스를 선보이면서 초창기부터 국내외 바이어의 관심을 모았다. ‘라비또(Rabito)’는 토끼의 느낌을 살린 브랜드 이름이다. 이 회사의 휴대폰 케이스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케이트 모스 등 해외 유명 연예인과 패션 피플이 이 휴대폰 케이스를 들고 다니면서 성장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인기에 비례해 수많은 모조품이 쏟아졌고, 관세청에서 국내 브랜드 위조상품 사례로 거론할 정도로 타격이 컸다. 그만큼 국내 브랜드로서 큰 인기를 얻은 사례로 인정받기도 했다.

라비또의 강점은 디자인이고 브랜드다. 거창한 마케팅 없이도 디자인을 통해 세계 시장에 진출했고 점차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이제 조직 진용을 갖춘 그는 아이디어 단계인 머릿속의 수많은 디자인을 신제품으로 개발해 브랜드를 국내외에 알리고 기존 휴대폰 액세서리 영역에서 나아가 리빙디자인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초기 라비또 체어는 고성능, 자연친화적 충전재를 넣었다. 하지만 부피가 커 운송비가 오르는 게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에 공기를 채우는 방식의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했다. 운반이 간편해진 것은 물론 공기 충전방식에 고품질 커버와 독특한 특성을 지닌 라비또 체어는 이번 전시회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메종오브제 현장에서 만난 곽 사장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바이어들 중엔 라비또의 귀엽고 세련된 토끼 로고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다양한 제품을 디자인하지만 특징이 확실해 바이어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