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원장의 파격…분당서울대병원 '혁신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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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그만 쓰고 현장서 쓸 수 있는 아이디어 내라"
직원이 제안한 중심정맥관 수술세트 작년 상품화 성공
헬스케어파크 올 문열어
아이디어 산업화로 창업기지 도약 꿈꿔
◆‘자율적 혁신’ 실험
세트는 핀셋, 가위, 칼, 주사기, 주사침, 거즈, 수술용 덮개 등으로 구성됐다. 모두 일회용이다. 그동안 시술을 하려면 따로 보관하던 이들 도구를 하나씩 빼내 한곳에 모아야 했다. 포장을 뜯은 뒤 도구를 들고 오가지 않아도 돼 감염 위험도 낮아졌다.3만원대인 안셋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만 한 해 2000~3000개 사용된다. 주요 대형병원에도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김민정 경영혁신팀 전담 간호사는 “직원이 낸 경영 혁신 아이디어가 상용화된 것으로, 병원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의 ‘자율적 혁신’ 실험은 의료 질을 높이고 환자 불편을 줄이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빨기’ 반응이 좋은 신생아의 치료 효과가 좋다는 데 착안해 신생아 빨기 운동을 개발했다. 모든 간호사가 운동법을 익힌 뒤 매일 신생아들에게 훈련을 시켰다. 아이들의 입원 일수가 1.5일 줄고 발육도 좋아졌다.위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이 낸 아이디어로 ‘위암 수첩’도 제작했다. 그동안 암 환자들은 본인이 받은 수술이 어떤 수술인지, 언제 검사를 하고 외래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와야 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안내받지 못했다. 수첩은 이 같은 불편을 해결했다. 모두 직원들의 자율적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결과물이다.
◆헬스케어혁신파크는 창업기지
이 원장은 취임 직후 혁신팀 회의를 직접 주재했을 정도로 안착에 공을 들였다. 혁신 아이디어를 내는 체인지에이전트는 전 직원의 15%에 달한다. 최근에는 현대카드 등에서 이 병원의 경영 혁신전략을 배우기 위해 다녀가기도 했다.
‘자율적 혁신’ 모델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이 원장은 직원들이 일정 비용을 출자한 직원 조합을 조직해 아이디어 상용화에 투자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첫 시도다.올해 병원은 ‘자율적 혁신’ 실험 무대를 병원 밖으로 넓힐 계획이다. 이 병원 의사들은 진료 아이디어를 산업화하기 위해 미국을 수차례 다녀왔다. 상반기 중 병원은 경기 분당 LH(한국토지주택공사) 부지에 7만6033㎡ 규모 헬스케어혁신파크 문을 연다. 바이오벤처 등과 함께 병원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교류의 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헬스케어혁신파크가 문을 열면 병원 안에서만 맴돌던 아이디어들이 바이오산업 현장으로 퍼져나가는 창업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