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세대' 대표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별세…반세기 '야당 외길' 걸은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

향년 79세…서울성모 24일 발인

'4·18 고대 의거' 주도…야당사 증인

14대까지 7선…최근 자서전 탈고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지난 20일 새벽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1937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이 전 총재는 부산상고와 고려대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1960년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회장 시절 ‘4·18 고려대 의거’를 주도해 4·19 혁명의 상징적 인물로 부상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1967년 고려대 은사이던 유진오 당시 신민당 총재의 추천으로 7대 총선에서 30세 나이에 신민당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부산 동래구에서 8·9·10대 의원을 지냈다.비상계엄 확대로 정치활동이 규제돼 1981년 11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못했지만 12대 때 지역구를 부산 해운대로 옮겨 국회에 재입성한 뒤 14대까지 총 7선을 했다. 신민당 사무총장 및 부총재, 통일민주당 부총재, 국회 5공 비리조사 특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박정희·전두환 정부를 거치며 야당 외길을 걸었다. 야권의 두 거목인 고(故) 김영삼·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한국 야당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1987년 개헌 이후 양김의 갈등 국면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편에 섰다. 하지만 1990년 김 전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 김종필 전 총재의 공화당과 3당 합당을 할 때 참여를 거부하며 결별했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길 전 의원, 무소속 홍사덕·이철 전 의원 등과 함께 ‘꼬마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선출됐다.

이후 199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 민주당을 창당하고 공동대표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잠시 정계를 은퇴했던 시기에 민주당 대표를 맡으며 야당 총수로서 정치적 전성기를 누렸지만, 1995년 김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한 뒤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는 과정에서 배제되며 그의 정치 인생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15대 총선과 1997년 포항 보궐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그는 1997년 대선 직전 이회창 총재의 신한국당과 합쳐 한나라당을 창당했지만 대선에서 패배해 또다시 야당의 길을 걸었다.2002년 대선 때는 민주당 시절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지원에 나섰고, 2007년 17대 대선에선 고향 후배인 이명박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기도 했다. 지난 6년간 자서전 집필에 전념했고 최근 탈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경의 씨와 1남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4일, 4·19 민주사회장으로 서울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 안장된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