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토요일이면 직원 '과외'시키는 CEO…"공부만이 회사와 고객 수익률 지킨다"

CEO 오피스 - 신성호 IBK투자증권 사장

공부로 실력 키운 '스타 애널'…1980년대 대우경제연구소 근무
"이한구 소장에 혼나며 배워"…투자전략팀장으로 승승장구

전국 꼴찌 지점의 반란…외환위기 때 투자실패로 좌천
"직원 전문성으로 승부하겠다"…1년 반 만에 실적 '서울 1위'

나는 상사 아닌 선배…금리·주식·환율·부동산 등
교재 직접 만들어 가르쳐…회사이익·고객수익률 '쑥쑥'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매주 토요일 IBK투자증권은 학교로 변신한다. ‘WM(고객자산관리) 토요스쿨’이 열리는 것이다. 2014년 첫 학기 때는 영업지점 프라이빗뱅커(PB)를 대상으로 했지만 작년 상반기부터 전 직원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강사는 신성호 IBK투자증권 사장. 교재는 직접 쓴 ‘웨어 투 인베스트(Where to invest)?’다. 거시경제, 자산, 금리, 주식, 환율, 부동산 등 6개 장으로 나뉜 책에는 그의 35년 증권업계 경험이 군더더기 없이 녹아 있다. 차트 분석과 재무설계 기초 내용, 경제성장률과 주가 상관관계 등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그래프가 가득하다.쪽지시험도 본다. 괄호 빈칸을 채우는 시험에서 평균에 미달하면 다시 시험을 봐야 한다. 인사 기획 등 경영지원부서 직원들도 예외는 없다.

신 사장은 2014년 8월 취임 일성으로 “공부하는 조직문화를 통해 10위권 증권사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다짐은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IBK투자증권의 순이익은 2014년 말 118억원으로 업계 29위였지만 1년 만인 지난해 말 303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25위에 올랐다.

외환위기 때 인생의 쓴맛을 보다
신 사장이 ‘공부’에 집착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가 ‘스타 애널리스트’로 유명해진 것도, 실패에서 다시 일어선 것도 공부 덕분이기 때문이다.

고려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1년 삼보증권에 입사했다. 삼보증권이 옛 동양증권과 합병을 거쳐 대우증권으로 바뀌면서 1984년부터 1997년까지 대우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신 사장은 이곳에서 인생의 스승들을 만났다고 했다. 서울대 수석 입학과 졸업으로 ‘아시아의 천재’라 불린 최명걸 전 대우그룹 부회장과 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이한구 소장, 증권업의 ‘절대 카리스마’ 심근섭 전 대우경제연구소 전무였다.대우경제연구소는 1980년대 한국 기업에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토론문화가 활발했다. 당시 대리였던 신 사장은 최 부회장과 25살의 나이 차이에도 선후배처럼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눴다. 이 소장은 엄한 성격이었지만 후배에 대한 교육에는 열성적이었다. “이 소장을 찾아가 질문하면 ‘이것도 모르느냐’고 혼냈지만 몇 시간 동안 앉혀놓고 과외 수업을 해주셨습니다.”

선배들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은 덕분에 신 사장은 연구소 투자전략팀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위기설이 불거질 때마다 “한국이 멕시코나 브라질인 줄 아느냐”고 투자를 독려하다가 고객들의 원성을 산 것이다. “잘난 줄 알고 우쭐대던 영웅이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한 꼴이었습니다.”

주민 반상회에서 투자설명회 개최그는 이 일로 대우증권 올림픽지점장으로 좌천됐다. 그만둘까 고민도 했지만 “반성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는 강창희 당시 리서치센터장의 조언에 마음을 다잡았다.

1998년 지점장으로 부임할 당시 올림픽지점의 영업실적은 전국 98개 대우증권 점포 중 95위였다. 신설 점포 2개와 사이버 점포 1개를 제외하면 꼴찌였다. 이런 점포의 지점장들은 대개 우수 인력을 영입해 난국을 돌파하려 하지만 신 사장은 달랐다. 어차피 ‘변두리 점포’라 인재가 오지 않을 터에 차라리 내부 학습역량 축적을 통해 직원들의 안목과 식견을 키우는 게 낫다고 봤다. 그때부터 10명 안팎의 영업직원을 데리고 과외 공부를 시작했다. 퇴근은 밤 11시였다. 어느 정도 시일이 흘러 직원들을 지역 반상회에 보내 투자설명회를 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공부 효과는 1년 반 만에 나타났다. 고객 수익률이 지역본부 내 다른 점포에 비해 20% 이상 높게 나온 것. 1999년 지점 실적은 전국 11위, 서울 1위로 올라섰다.

신 사장은 우리투자증권과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 우리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을 지냈다. 가는 곳마다 ‘공부하는 리서치센터장’으로 유명했다. 지금까지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각 분야 전문가 명단을 모아놓고 잘 모르는 부분은 수시로 물어보며 공부한다. 매주 임원회의 자료도 직접 만든다. 실적 확인만 하는 회의가 아니라 시장 상황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임원들도 공부를 하고 참석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매달 ‘호프데이’서 직원들과 만나

IBK투자증권에서 직원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권업의 본질이 고객 수익을 높이는 것인 만큼 공부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사원에서 대리 진급은 자동이지만 그 이후는 자기 실력”이라며 “언제까지 노조의 보호로 자리를 유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IBK투자증권 노사가 금융권 최초로 저성과자 일반해고 취업규칙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도 교육 관련 지원에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신 사장의 뜻에 직원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교육 효과는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2014년 4분기 -4.8%였던 고객 수익률(전 지점 오프라인 계좌의 평균 누적수익률)은 지난해 상반기 25.1%, 1년 전체 10.8%로 급등했다. 지난해 국내 주식형펀드 순위 상위 18%에 해당하는 수익률이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WM사업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전환했으며, 지난해 매출(5746억원)과 영업이익(399억원)은 전년 대비 39.3%, 125.4% 증가했다. 올해 3년 만에 신입 직원 채용도 재개하기로 했다.

신 사장은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매달 ‘호프데이’라 불리는 입사 기수별 모임을 통해 직원들과 만나고 있다. 서로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동기들끼리 만날 기회를 주면서 직원들의 얘기도 직접 듣기 위해서다. 지난해 창사 이후 처음 연 체육대회에서는 직원들이 건네는 술잔을 모두 받아 마시는 바람에 대취하기도 했다.

신 사장은 직원들을 상사가 아니라 선배의 마음으로 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여러 선배들의 가르침 덕분에 지금의 신성호가 있는 만큼 나도 내가 받은 것을 후배들에게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며 “직원들의 눈빛과 태도를 달라지게 한 것이야말로 IBK투자증권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 신성호 사장 프로필△1956년 충남 논산 출생 △1975년 충남고 졸업 △1981년 삼보증권 입사 △1982년 고려대 통계학과 졸업 △1984년 대우경제연구소 투자전략팀 연구위원 △1998년 대우증권 올림픽지점장 △2000년 대우증권 투자전략부장 △2002년 우리증권 리서치센터장 △2005년 동부증권 법인영업본부장 △2006년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 △2008년 한국증권업협회 상무 △2009년 우리투자증권 상품전략본부장 △2010년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2013년 우리선물 대표 △2014년 8월~ IBK투자증권 대표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