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 마지막 무대…"감성연기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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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첫날 공연서 주인공 맡은 황혜민·엄재용 부부“고전발레 ‘백조의 호수’에 오데트와 지크프리트 왕자로 함께 나오는 무대는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고전발레 중엔 가장 많이 공연했죠. 2004년 첫 공연 이래 국내외 전막 공연만 20여회, 갈라까지 합하면 더 많을 거예요. 몸에 익은 작품인 만큼 더 깊고 섬세한 표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백조의 날갯짓 표현 까다로워 손에 테이프 감고 연습했죠"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38)·엄재용(37) 부부는 한국 발레계의 간판스타다. 각자의 기량과 10년 넘게 호흡을 맞춘 파트너십 덕분에 ‘믿고 보는 주역 커플’로 통한다.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백조의 호수 공연의 첫날 무대에 선다.백조의 호수는 고전발레의 대명사격인 작품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마리우스 프티파가 춤을 짰다. 악마 로트바르트의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한 공주 오데트, 그를 구하려는 지크프리트 왕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의 백미는 1인 2역을 맡은 주역 발레리나의 무대다. 백조인 오데트로 무대에 설 때에는 서정적이면서 우아하게 춤추고, 흑조 오딜일 때는 강렬하고 도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황혜민은 “서로 상반되는 인물을 표현해야해 기교와 연기력이 모두 필요하다”며 “발레리나라면 꼭 한번 도전해야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백조는 주로 느린 아다지오 음악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있는 춤을 춥니다. 흑조는 시작부터 쾅쾅거리는 음악과 함께 뛰어나오면서 에너지를 뿜어내고요. 흑조가 백조인척 하다가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엔 눈빛부터 동작까지 확 바뀌어야 합니다. 두 역을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어야만 가능한 일이죠.”사람이 아닌 새를 연기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다. “백조의 날갯짓 표현이 까다로워요. 손가락 끝까지 힘을 줄때도 엄지손가락은 접어 붙이고 있어야 합니다. 자꾸 잊어버려서 손을 테이프로 감고 연습하기도 했어요. 머리를 움직일 때도 코 대신 부리가 있다고 상상하며 춤 선 표현에 신경씁니다.”
엄재용은 2001년, 황혜민은 2004년 처음으로 이 작품의 주역을 맡았다. 엄재용은 “여러 해 춤을 추다보니 주역으로서 전막을 이끌어가는 노하우와 힘이 생겼다”며 “전체적인 이야기의 감정선을 생각하며 춤의 강약을 조절한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는 정확한 동작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했어요. 이제는 전체적인 과정을 보다 매끄럽고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합니다. 여러번 무대에 서면서 노련미가 생겼달까요. 그만큼 매번 더 높은 목표가 생기기도 하고요.”두 사람은 선화예술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엄재용은 2000년, 황혜민은 2002년에 발레단에 입단했다. 2004년부터 주요 작품의 파트너로 함께 활약했고, 2012년 화촉을 밝혔다. 엄재용은 “오랫동안 함께 춤을 춰왔기 때문에 서로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다”며 “서로 워낙 잘 맞춰주다보니 연습 중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둘은 올해 각각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 황혜민은 10년 넘게 함께 춤을 춘 남편 외에도 수석무용수 이동탁과 함께 공연한다. 엄재용은 광주시립발레단과 일본의 도쿄시티발레단의 객원 수석 무용수로 활동할 예정이다. 지난해 현대무용 프로젝트 ‘푸가’에 참여한 엄재용은 “새로운 분야로 춤의 저변을 넓혀가고 싶다”고 설명했다.
발레 무용수들은 보통 40대 초반을 은퇴 시기로 본다. 이들의 춤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아직 은퇴 시점을 생각해놓지는 않았어요. 2세를 생각하고는 있지만 지금 당장 은퇴한다고 생각하면 후회가 클 것 같거든요. 남은 시간에 아쉬움이 없을 때까지 춤을 춘 다음 은퇴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제가 선 무대에 최대한 집중하며 즐기고 싶어요.”(황혜민)
“고전발레 공연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분야에선 계속 춤을 출 것 같습니다. 모던발레나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새로운 춤을 접하는 게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거든요. 이런 기분을 느끼는 한 계속 춤을 출 거예요.”(엄재용)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