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쇼크] 세 불리 의식한 알파고, 우변에 승부수…실수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세돌 첫 판 충격패
승패를 가른 것은 판세를 불리하게 ‘판단’한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가 우변에 뛰어든 승부수 102였다. 알파고는 최고 프로기사 못지않은 판단력과 냉철함을 발휘하며 세계 바둑 최강 이세돌 9단에게 패배를 안겼다. 이 9단은 알파고의 실수를 파고들며 경기 중반 승기를 잡았지만 알파고가 던진 승부수를 뚫지 못하고 돌을 던지고 말았다.
상상 뛰어넘는 알파고의 경기 진행이 9단과 알파고는 9일 오후 1시부터 서울 당주동 포시즌스호텔에서 역사적인 제1국을 시작했다. 구글 딥마인드 개발자이자 아마추어 6단인 아자 황 씨가 알파고를 대신해 돌을 가렸다. 전문가들은 백에 7.5집의 덤을 주는 중국 바둑 룰에 따라 이세돌 9단이 백돌을 선택하는 게 유리할 것으로 여겼지만 이 9단은 예상과 달리 흑을 잡았다.

초반 이 9단은 정석과 다른 포석을 펼쳤다. 이세돌이 ‘인류사에 처음 등장한 수’(박정상 9단)라고 평가받은 새로운 수 7로 알파고를 시험했다. 알파고는 당황하지 않고 8로 침착하게 대응하며 초반 포석을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알파고는 첫수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들이는 듯했지만, 이후 대부분의 수를 1~2분 만에 두는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24수째는 의외의 수를 뒀다. 이 9단은 난감해했다. 알파고의 시간 싸움에 이 9단이 말려든 모습이었다. 이 9단이 승부를 걸어올 때마다 알파고는 장고 없이 바로 돌을 둬 이 9단을 당황케 했다.이후 이 9단이 세를 쌓아나가자 팽팽한 경기가 이어졌다. 유창혁 바둑국가대표팀 감독은 “알파고가 상상한 것 이상의 실력을 갖췄다”며 “이 9단이 세계대회 결승보다 더 긴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룡 9단은 “사람은 쉽게 가야 할 부분은 쉽게 가고 어렵게 둘 부분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알파고는 그런 것이 없다”며 “후반으로 갈수록 이 9단이 시간의 압박을 받을 것 같다”고 해설했다.

막판 실수로 무너진 이세돌

팽팽하게 이어지던 경기는 알파고의 치명적인 실수로 흐름이 바뀌었다. 알파고가 둔 80은 앞의 열 수를 헛되게 하는 악수였다. 이 9단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좌중앙에 큰 흑집을 지어 다소나마 유리한 형세를 이뤘다. 하지만 불리한 판세를 느낀 알파고는 승부수를 던져 전세를 뒤집었다. 알파고는 102로 우변 흑진에 침투하는 모험을 선택했다. 추격이 필요할 때 예상외로 강한 승부사 기질을 보여준 것이다. 당초 알파고는 수비 위주로 공격적인 수를 두지 않고 계산 위주의 승부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를 뒤집었다.

이 9단은 장고를 거듭했으나 뚜렷한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 흑집이 부서지며 우상변이 백집으로 돌변해 형세가 급격하게 알파고 쪽으로 기울었다. 이 9단은 맹렬하게 추격전을 펼쳤으나 좀처럼 집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수차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고민하던 이 9단은 결국 186수 만에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유창혁 9단은 “오늘 이 9단이 낯선 상대와 대국하면서 다소 긴장한 듯 평소답지 않게 실수가 많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현장 해설을 맡은 이현욱 8단은 “어느 한 수가 패착은 아닌데, 백이 실수하니 흑이 방심한 것 같다”며 “원래 이 9단이 후반에 강한데 오늘은 계산을 잘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만수/김보영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