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억까지 치솟은 천경자 그림…가격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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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작 '정원' K옥션 경매서 7년 만에 최고가 경신지난해 6월 작고한 천경자 화백의 그림값이 들썩이고 있다.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이 지난 9일 연 봄철 메이저 경매에서 천 화백의 1962년작 ‘정원’이 17억원에 팔려 개인 최고가 기록을 7년 만에 경신했다. 기존 최고가 작품은 2009년 K옥션 경매에서 팔린 ‘초원Ⅱ’(12억원)였다. 화면 중앙을 푸른색 톤으로 꾸민 '정원'은 천화백 특유의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고 이후 거래 급증세…작년 경매시장서 79점 팔려
2007년 K옥션 가을 경매에서 11억5000만원에 팔린 것이 이번 경매에 추정가 13억~20억원으로 나와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낙찰자는 아시아지역 미술품 애호가로 알려졌다. 오는 16일 열리는 서울옥션 봄 경매에도 천 화백의 1982년작 ‘여인’(추정가 6억5000만~12억원)이 전략상품으로 나와 낙찰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40년 만에 100배 이상으로 급등
미술계는 ‘정원’의 낙찰 최고가 경신을 계기로 천 화백의 그림값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작품 수가 유화 드로잉 등 1000여점으로 적은 데다 소장가들이 그림값이 오를 것으로 보고 시장에 내놓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며 “석채로 그린 인물화, 풍경화는 수묵담채 풍경화보다 4.5배 가격이 높고, 석채 동·식물화 등이 비싸게 거래된다”고 말했다.
1970년대 점당 200만~1000만원에 거래되던 천 화백의 작품은 현재 작품성과 크기에 따라 2억~10억원대를 호가한다. 40여년 만에 100배 이상으로 오른 것이다. 작년 7월에는 ‘테레사 수녀’가 8억8000만원에 낙찰된 데 이어 미국 수집가가 오래 소장한 미인도 ‘막은 내리고’(8억6000만원), ‘모자를 쓴 여인’(6억3000만원), ‘미모사 향기’(6억1000만원), 꽃과 나비(6억원) 등도 억대 작품 대열에 합류했다. 매매는 되지 않지만 천 화백이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93점 가운데 ‘생태’(51×87㎝) ‘나의 슬픈 전설의 22페이지’(43×36㎝) ‘여인의 시’(59.5×47㎝) 등 20여점은 점당 20억원을 넘을 것이란 추정이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작년 경매시장서 거래된 천 화백 작품의 평균 호당 가격은 2268만원으로 박수근(1억7500만원), 장욱진(3363만원)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2005년 이후 작년까지 천 화백 작품은 503점(종이 그림, 드로잉, 오프셋판화 포함)이 경매에 출품돼 391점이 낙찰됐다. 거래총액은 187억원, 점당 평균 낙찰가는 점당 5800만원꼴이다. 지난해에는 경매시장에 나온 104점 중 79점(낙찰총액 41억원)이 팔려 낙찰률 75%를 기록했다.
◆화랑가에 ‘미인도’ 시리즈 종적 감춰천 화백 작품이 인기를 끄는 것은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화풍 때문이라고 미술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한(恨)과 고독이 짙게 배어 있는 그의 작품은 미래지향적인 소재와 신비주의적 채색을 통해 삶의 희열과 현장성을 엿볼 수 있어 컬렉터들이 많이 찾는다는 설명이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천 화백은 풍경을 비롯해 인물, 동·식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는데 그중에서도 미인도가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여인과 꽃을 소재로 한 그림은 최근 화랑가에서 자취를 감춘 상태이고, 풍경과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은 간간이 유통된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