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화계 홀린 한국 CG 기술력

김보영 기자의 콘텐츠 insight
최근 국내 컴퓨터그래픽(CG) 전문업체인 매크로그래프에 중국 영화제작사 관계자가 다녀갔다. 본래 미국 할리우드 CG 회사와 영화를 찍기로 했던 제작사다. 할리우드 업체가 도산하면서 부득이하게 매크로그래프와 계약을 맺었다. 이 관계자는 매크로그래프의 CG 공정을 직접 지켜본 뒤 “가격 대비 성능이 최고”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붉은 봉투에 현금 약 1억원을 넣어 격려금 조로 회사 직원들에게 건넸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에게 “한국의 기술력에 감동받았다”고 극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중국 영화산업이 급팽창하면서 ‘한국산(産) CG’가 특수를 누리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국내 CG 회사는 한국 영화산업이 꽃을 피우면서 함께 성장했다. 동아시아에서 자국 영화산업이 한국만큼 발달한 나라는 없다. 시각특수효과(VFX) 산업의 발달은 영화산업의 발달 궤적을 그대로 좇는다. CG 분야는 북미·유럽이 ‘원조’지만 중국 영화사로선 인건비가 싸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이 더 매력적이다.

중국의 영화시장 성장세는 가파르다. 중국영화산업연구보고와 영화진흥위원회 등에 따르면 중국 내 극장 수는 2010년 2000곳에서 지난해 7100곳으로 급증했다. 미국영화협회가 공개한 2014년 글로벌 박스오피스 시장 규모는 북미가 104억달러(약 12조4000억원), 중국이 그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8억달러(약 5조7000억원)였다. 갑작스레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블록버스터급 대작 제작도 활발하다. 중국 영화계에서 눈에 불을 켜고 실력 좋은 CG 회사를 찾는 이유다.

중국 내에도 CG 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국내 기술과는 아직 상대가 안 된다는 게 업계 평가다. 호랑이 잔털까지 섬세하게 묘사하거나(대호·2015) 물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해상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내는(명량·2014) 한국 업체가 탐날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CG 회사들은 중국 측의 협력·투자 제안은 물론 매각 제의까지 물밀듯 밀려와 정신을 못 차리겠다고들 한다. 한 CG 회사의 중국 담당자는 “쏟아지는 메일을 일일이 번역해 임원들에게 보내는 것도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활발한 블록버스터 제작은 불안정한 CG 회사에 지속적 먹거리를 창출해준다는 점에서 호재다. 하지만 일이 몰려도 너무 몰린다는 것이 문제다. 직접 일을 따온 회사가 비교적 작은 규모의 회사에 재하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일거리가 분배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인력이 태부족이라는 것이 업계의 큰 고민 중 하나다. 몇몇 업체는 중국에서 CG 학원을 운영해 직접 기른 인력을 현지에서 채용하고 중국 진출 발판도 단단히 다지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 사이 ‘천공’ ‘베이스FX’ 등 중국 CG 회사들이 조용히 자라고 있다. 국내 CG 회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 영화제작사는 영화를 한번 찍을 때마다 기술력이 떨어져도 자국 업체를 한 곳은 반드시 끼워서 일을 맡기고 배우게 하는 방식으로 중국 CG 산업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CG 회사는 차릴 때 자본금이 얼마 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기술을 보유한 ‘사람’만 있으면 달랑 컴퓨터 몇 대로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다. 드라마·예능 PD를 웃돈을 주고 스카우트하는 것처럼 5~6년 뒤 CG 산업에서도 국내 기술인력 유출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