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이러고도 골프를 대중화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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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우 문화스포츠부 차장 leebro2@hankyung.comK씨(47)는 공무원이다. 마흔 넘어 어쩌다 배운 게 골프다. 고교 후배를 따라 ‘2차’로 간 스크린골프에서 ‘손맛’을 알아버린 뒤 이른바 ‘묻지마 골프’를 친 지 5년째다. “퍼팅이 짧으면 공무원처럼 소심하다고 동반자들이 한마디씩 하지만 진짜 내가 공무원인 줄은 모른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제 돈 내고 치면서도 골프백에는 친구 이름을 적어 다닌다. ‘공무원이 어딜?’이라는 시선이 불편해서다. ‘공무원 100만명이 골프만 편히 쳐도 골프산업이 벌떡 일어서지 않을까’란 생각도 불쑥 드는 그다. 하지만 입도 뻥끗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그에게 ‘이중사회’다.
직장인 P씨(38). 그는 1년에 서너 번 해외로 골프여행을 간다. 국내 골프비가 지난 10년 새 반값 수준으로 뚝 떨어졌지만 매력도는 여전히 ‘B급’이다. 중국은 그 반의 반값이면 산해진미에 관광까지 덤이다. 유럽 일부 지역에선 항공료 수준에 식사·숙박·골프까지 공짜로 끼워주며 한국 골퍼들을 유혹한다. 요즘 인기 있는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 패키지다.70년대 '사치세' 유산 그대로
골프장 대표 G씨에게 ‘진짜 수수께끼’는 정부다. 골프를 아직도 ‘소수 상류층의 신선놀음’쯤으로 보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개별소비세가 카지노의 3배, 경마장의 12배, 경륜·경정장의 30배다. 재산세는 일반 기업 최고세율(0.4%)의 10배, 일반 건축물(0.25%)의 16배를 매긴다.
골프가 실제로 ‘소수의 전유물’이던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사치세’의 유산이다. 매출의 33%를 세금으로 내다가 골프장이 망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골프 대중화를 부르짖는 정부의 속마음이 그는 궁금하다.‘대한민국 골퍼’에겐 이 나라 자체가 미스터리다. ‘골프 여제’ 박인비의 우승엔 박수를 치면서도 자신이 골퍼란 사실은 숨겨야 할 비밀이다. ‘골프 좀 친다’는 얘기는 바보나 하는 ‘자폭’이다. 스크린골프비보다 못한 그린피 3만5000원짜리를 쳐도 ‘삐딱한’ 시선은 달라지지 않는다. 수많은 불법 접대방식 중 유독 ‘술과 골프 등 향응을 제공하고’란 표현은 관습적 수사가 돼 버렸다. 골프장은 이미 ‘잠재적 범죄공간’으로 간주된 지 오래다. ‘골프의 성인(聖人)’ 바비 존스가 살아 있다면 “그럴 거면 왜 골프를 들여왔느냐”고 말할 게 뻔하다.
'떳떳하게' 골프 치기 힘든 나라
나라가 ‘이중성의 덫’에 빠져 있는 사이 우리가 나눠 써야 할 돈은 밖으로 새 나가고 있다. P씨 같은 주말 골퍼들이 해외 골프관광으로 쓰는 돈이 연간 1조2100억원(서울대 스포츠과학 연구소)이란 분석도 있고, 3조5000억원(골프장경영협회)에 달한다는 추산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느긋해 보인다. 지난 십수년간 골프 대중화 대책이 ‘노카트·노캐디제 확대’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굴곡이 심한 산악 지형과 티오프 간격이 촘촘한 한국 골프장의 특성상 대다수 골프장으로 확산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던 게 노카트·노캐디제다. 골퍼들이 스스로 카트를 운전할 경우 미끄러짐이나 전복 등 안전사고가 빈번하고 경기 시간까지 지체되는 등 부작용이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알파고가 몰고 온 ‘바둑 열풍’을 골프계가 못내 부러워하는 건 그래서다. ‘온 국민이 열광하는’ 그런 날이 오길 기다리느니 차라리 ‘돌’을 던져 버리고 싶은 게 요즘 골프계의 끓는 속내다.
이관우 문화스포츠부 차장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