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협업'으로 혁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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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카페미국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는 학생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하는 킹스필드 교수가 등장한다. 킹스필드 교수는 학기마다 풀기 어려운 과제를 내준다. 학생들은 난제를 해결하려고 공부 모임을 만든다. 혼자서는 문제를 풀 수 없어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학생들은 문제 풀이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이 시기가 되면 매번 도서관에서는 자료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어떤 그룹도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말은 이렇다. 극적인 상황에서 하트라는 주인공은 여러 공부 모임을 모아 자료를 공유하는 계약을 주도한다. 결국 학생들은 각자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통합하고 논리적 결론을 도출해 과제 해결에 성공한다.
2000년 위기에 빠진 P&G…협업 통해 매출 끌어올려
공동의 목표 정하고 조직 역량 합쳐야 시너지
산업사회가 창조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혁신을 추구하는 방식이 분업에서 협업으로 바뀌고 있다. 분업은 생산 과정을 여러 전문적인 부분으로 나눠 여러 사람이 분담하는 노동 형태다. 반면 협업은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여러 사람이 계획적으로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효율성이 강조되던 시대에는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시스템처럼 ‘분업’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었지만, 창조성이 요구되는 최근에는 개인, 부서, 조직, 산업, 국가 간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프록터앤드갬블(P&G)은 이 같은 협업으로 혁신을 이룬 기업이다. 2000년 3월 P&G는 위기를 맞는다. 1분기의 수익은 전년 동기보다 10% 줄었고 주가는 한 달 동안 30%가량 떨어졌다. 위기 상황 돌파를 위한 구원투수로 앨런 래플리가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래플리는 P&G 회생계획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협업’으로 정하고 각 부서의 기술적 능력을 결합해 신제품을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 예컨대 2001년 미국에서 출시된 치아미백용 테이프 ‘크레스트 화이트 스트립트’는 세 부문의 P&G 기술개발팀이 참여했다.
구강관리 부문의 치아미백 기술, 섬유·가정용품 부문의 표백기술, 그리고 중앙연구소의 필름 기술 등 세 부서가 힘을 합치자 병원에서 500달러를 내야 하는 치아미백을 24달러로 할 수 있는 신상품이 나온 것이다. 협업을 활용한 경영 전략은 탁월한 성과로 이어졌다. 래플리가 취임할 때 390억달러이던 매출은 2008년 830억달러로 두 배 넘게 늘어났다.
제대로 된 협업은 큰 성과를 안겨준다. 하지만 잘못된 협업은 시간과 비용, 자원만 낭비하기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하다. 협업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어도 다음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우선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1990년대 유럽 항공기 제조회사 에어버스는 ‘보잉을 이기자’라는 목표를 정했다. 당시 보잉의 연간 수주량은 273대지만 에어버스는 110대에 불과했다. 에어버스의 각 사업부문은 공동의 목표 아래 힘을 합쳤고, 1999년 476대의 비행기를 수주했다. 355대에 그친 보잉을 사상 처음으로 따돌리는 쾌거를 올린 것이다. 에어버스는 ‘보잉을 이기자’라는 전사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경쟁의 대상이 사내 다른 부서가 아니라 외부에 있음을 자각토록 하면서 협업을 유도해 시너지를 내게 했다.
다음으로 T자형 인재, 조직을 활용해야 한다. T자형 인재란 자신의 팀 성과에 집중하면서도 다른 조직과도 넓게 협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말한다. 영국의 석유회사 BP와 아모코(amoco)가 합병된 뒤, 아모코 출신인 데이비드 나이젤은 이집트 가스사업부 총책임자로 임명됐다. 그의 직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업부의 수익, 매출, 비용 등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T자의 수직 부분이다. 또 하나의 직무는 T자의 상단 수평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다양한 사업부 간 협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나이젤의 이집트 가스사업부 외에 지중해 및 대서양 지역의 7개 다른 사업부서가 이런 임무를 받았고, 이들은 그룹의 공동 목표를 위해 협업했다.그 결과 BP 엔지니어가 자문이 필요할 때 아모르에서 해당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찾아 도움을 받음으로써 시너지를 냈고, 나이젤은 마케팅 계획을 세울 때 다른 사업부에 있는 BP 임직원의 조언을 구해 성공적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혜숙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