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외부감사인이 허위보고까지 책임지라고?

제출된 재무정보로 하는 회계감사
의도된 허위자료 적발은 어려워
부실감추기에 대처할 방법 찾아야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
3000명이 넘는 희생자를 초래한 2001년 9·11 테러는 충격적이었다. 빈 라덴의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아메리칸과 유나이티드 소속 항공기 2대씩을 납치해 뉴욕 트윈타워와 워싱턴 펜타곤을 들이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대는 승객 저항으로 평지에 추락해 추가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2011년 3월11일 도쿄 북동쪽 해역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9.0 규모 지진이 발생해 초대형 쓰나미가 몰려왔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이어졌고 2만명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9·11 테러는 공항 출입관리 실패가 단초였고, 후쿠시마 비극은 쓰나미 위험이 높은 해변에 원전을 건설한 자체가 문제였다.

어린 학생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세월호 참사는 정말 어이없다. 분열과 대립으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국회의원 선거를 2주 남겨 놓은 시점에서 2년 전의 기억을 추궁하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2차 청문회가 재개됐다. 사고가 생길 때마다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으로 요란하다. 처벌과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면 사고원인은 모호해지고 예방대책도 부실해진다. 미국과 일본은 차분하게 실패 원인을 찾아내 개선책을 마련하는데 우리는 세월만 허송한다.대우조선 분식회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과거 2년분 재무제표 수정을 요구한 안진회계법인에 대한 역풍도 감지된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회계법인 손보기에 나선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감리를 강화할 태세다. 회계법인은 감사 대상 회사가 제출한 재무제표의 적정성을 검토해 감사의견을 표명한다. 특히 중요한 이상 항목이 발견되거나 불확실성이 중대할 경우 부적정의견 또는 의견거절을 표명하는데 이 경우 감사 대상 회사 주식은 상장폐지된다. 상장폐지에 부딪히면 회사는 극렬히 저항하고 어김없이 소송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중요한 이상 항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의 적정의견이 표명된다. 적정의견을 받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금융감독원 감리나 감사원 감사는 지적사항에 대한 처분에 한정되고 다른 추가적 추론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회계법인의 적정의견은 오지랖 넓은 함의 때문에 회사가 잘못되면 무조건 책임 추궁이 뒤따른다.

대우조선 회계 문제는 해양플랜트 공사비가 예상보다 훨씬 늘어나 생긴 것이다. 공사비가 더 소요돼 손실로 마감될 것이 예상되면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하는데 회사가 이를 숨겼다. 항공기와 헬리콥터로 며칠이 걸려야 갈 수 있고 감사인이 현장에서 확인해도 바다 밑으로 얼마짜리 부품이 투입됐는지 알기 어렵다.산업은행이 대주주로서 재무를 감시하는 경우 내부통제가 강하고 위험이 낮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 경우 회계법인은 감사표본을 줄이고 감사시간을 단축해 감사보수를 낮추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산업은행도 몰랐다는 주장이다. 회사 내부에서 철저히 담합해 허위자료를 내놓으면 외부감시를 통한 적발이 어렵다. 영국 법원은 회계감사 책임에 대한 1896년 판례에서 이미 이를 확인했다. 감사인의 역할은 숨긴 것을 빠짐없이 찾아내는 수색견 블러드하운드(bloodhound)가 아니라 부정의 침투를 경비하는 경비견 워치독(watchdog)이라는 것이다.

쓰나미 대비에는 방벽을 쌓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방벽을 무한정 높이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서는 지나치게 높이 쌓아 사고예방에 기여하지 못하는 부분은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교통안전을 위해 선박이나 항공기 사용연한을 지나치게 단축하면 요금 인상을 유발한다.

감사 실패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공인회계사들이 보다 신중히 대처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감사 책임을 가혹하게 물으면 감사 투입 시간 증가로 감사비용이 폭증한다. 회사 임직원의 허위보고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한편 내부자 담합이 유독 심한 우리 환경에 맞춘 정교한 감사기법을 개발해야 한다. 공인회계사회가 이론과 실무 경험이 풍부한 인사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감사 대상 회사의 부실 감추기에 대처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