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면세점 사업, 자유화가 맞다

"외국인 관광객이 주 고객인 면세점
진입장벽 허물어 자유경쟁케 해야 사업규모 커지고 경제에도 이득"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
예전엔 외국 출장을 나갔다 올 때마다 공항 면세점에서 담배 두 ‘보루’를 사 들고 오곤 했다. 가끔은 선물로 줄 위스키를 산 적도 있다. 원래 면세점은 담배나 술, 기념품을 팔던 곳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면세점을 가보면 그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무척 화려해진 데다가 최고의 명품점들이 모여 있어 눈요깃감이 많다. 이러다 보니 면세점에서 쇼핑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관광객도 많아졌다. 덕분에 한국은 세계 면세점 시장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한국 면세점의 경쟁력을 높인 공은 롯데와 신라, SK 등 대기업 면세점들에 있다. 그들은 술과 담배만 팔던 면세점을 명품숍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단순한 쇼핑을 엔터테인먼트와 관광이 결합한 종합 서비스로 탈바꿈시켰다. 세계의 어떤 면세점도 시도해보지 않은 일을 해서 새로운 시장을 일궈낸 것이다. 그 덕에 기념품 판매점에 불과하던 면세점 사업이 백화점을 넘어서는 중요한 산업으로 등장하게 됐다.성공을 거두고 나니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특혜를 받아 그렇게 된 것 아니냐는 비난도 쌓여갔다. 2012년부터 대기업에 대한 특혜를 없앤다면서 중소기업 면허를 확대하고 대기업의 면세점 허가는 기존 10년 자동 갱신에서 5년 심사제로 바꿔 놓았다. 결국 작년 말에 롯데와 SK가 ‘허가’를 뺏겼다. 그곳에서 일하던 2200명의 직원도 실업자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그렇다고 의도한 대로 중소기업 면세점이 득을 본 것도 아니다. 2013년 새로 특허를 받은 경남, 전남, 인천, 강원의 중소기업 면세점들이 능력의 한계를 실감하고 스스로 면허를 반납했다.

면세점 사업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이익이 충돌하는 곳이 아니다. 면세점이 성공하려면 외국인 관광객을 매혹시킬 수 있어야 한다. 최고의 명품숍과 재미있는 볼거리, 놀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대형 테마파크를 세우는 일만큼이나 큰 투자와 위험이 따른다. 그런 사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나눠먹기식으로 접근한 것은 난센스다.

설령 면세점 사업이 특혜라면 그에 대한 해법은 누구나 면세점을 할 수 있게 허용해서 특혜의 근원을 없애는 것이다. 특혜의 근원은 놔둔 채 그것을 나눠주는 데에 집착한다면 아무리 ‘공정’하게 심사를 하더라도 결코 공정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나눠가지는 방법을 바꾼다고 해서 특혜가 특혜 아닌 것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면세점 사업은 자유화해야 한다. 면세점의 주 고객은 외국 관광객이다. 면세점 매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손해볼 국내 사업자들은 거의 없다. 면세점은 많을수록 좋고 그들 간의 경쟁은 치열할수록 좋다. 여기서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일자리는 늘고 법인세 수입도 증가할 것이다. 자유 경쟁을 허용할 때 면세점 사업도 커지고, 한국 경제에 득이 된다.

면세점 사업은 등록제나 신고제로 전환해서 일정한 실력만 갖추면 누구나 점포를 낼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 허가 당국도 롯데와 SK에 다시 허가를 내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다. 새로 허가를 받은 업체들의 반발이다. 허가받기 이전에는 자유화에 동조하던 이들이 일단 허가를 받고 나자 허가권을 늘리는 데에 격렬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안타깝다. 딱한 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롯데와 SK가 다시 문을 연다면 신규 사업자들이 자리를 잡는 데에 어려움이 클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보호에 기대서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정부 정책의 혼란으로 인한 손실이 크겠지만, 그 부분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일이지 다른 업체를 못 들어오게 막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제조업이나 건설업에 비해서 한국의 유통업은 많이 낙후돼 있다. 면세점만이라도 세계 수준의 유통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자유경쟁 체제를 허용하기 바란다.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