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극 요소에 타악기 가미…중국판 '리차드3세' 왔다

셰익스피어 400주기 맞아
1일 명동예술극장서 개막

'권력의 허무함' 초점 맞춰
원작 재해석에 성공적 평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1일 개막하는 셰익스피어 연극 ‘리차드 3세’. 중국국가화극원 제공
텅 빈 무대에 흰 천이 드리워진다. 천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죄악을 드러내는 ‘살인’ ‘욕망’ ‘권력’ ‘저주’와 같은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인간의 죄악으로 더럽혀진 글자들 위로 새빨간 잉크가 쏟아져 내린다. 리차드 3세는 말한다. “말, 말을 다오! 내 왕관을 내줄 터이니 말을 다오!” 죽음 앞에서 인간의 권력은 허무함 그 자체다.

인간 본질적인 권력욕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꼽히는 셰익스피어 연극 ‘리차드 3세’가 중국 버전으로 다시 태어난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1~3일 공연하는 중국 국가화극원 초청 공연 ‘리차드 3세(理査三世)’다. 리차드 3세는 영국 요크 왕가 최후의 왕인 리차드 3세(1452~1485)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극 중 가장 악한 인물을 그린다.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친족을 살해하고 조카를 폐위시키는 ‘영국판 수양대군’이다.
이번 공연은 노래, 대사, 무술 동작 등이 결합된 중국 전통 연극인 경극의 요소와 중국식 의상, 타악기 소리를 가미해 영국 고전극을 중국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념해 열린 ‘세계 셰익스피어 축제’에 초청돼 셰익스피어 전용 극장인 영국 런던 글로브극장에서 처음 해외 공연을 선보였다. 이후 헝가리, 덴마크, 미국 등지에서 초청공연을 한 뒤 지난해 다시 영국에서 초청공연을 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공연을 위해 지난 29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을 찾은 연출가 왕샤오잉 국가화극원 부원장은 “해외 공연 당시 이 작품의 경극적인 부분에 대한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며 “특히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방한은 2008년 영화 ‘패왕별희’의 연극 버전인 ‘패왕가행’ 이후 처음이다.경극적인 요소를 살리기 위해 국가경극원 소속 배우 3명을 캐스팅했다. 앤 부인, 웨일즈 왕자, 마녀 등 1인 3역을 맡은 여배우 장신이 대표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타악기 소리가 들어가는 경극처럼 이 작품에서도 악사가 등장한다. 왕 연출은 “악사 한 명이 서른 개의 타악기를 연주하는데, 해외 공연을 할 때마다 이 악사가 가장 큰 주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권력의 허무함’이라는 주제의식에 집중하기 위해 인물의 특성도 변화시켰다. 기존 연극에서 리차드 3세는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음흉한 야심가로 등장한다. 중국판 리차드 3세는 그의 콤플렉스 대신 ‘인간의 양면성’에 집중하기 위해 등이 굽은 꼽추라는 설정을 뺐다. 잘생긴 배우 장둥위를 리차드 3세 역으로 캐스팅했다. 왕 연출은 “장애를 안고 있는 리차드 3세의 콤플렉스와 결핍을 부각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며 “한 사람의 권력욕과 욕망은 모든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것이지 콤플렉스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원작에 없는 마녀를 등장시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작품인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 캐릭터를 차용한 것. 그는 “‘리차드 3세가 역사적 인물에 집중했다면, 맥베스는 역사적 인물보다 인간의 욕심이나 야망에 집중한 작품”이라며 “마녀 역할을 차용할 경우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더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서양 연극은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동양 연극에서 탈출구를 찾아왔다”며 “리차드 3세가 선보인 동양적인 미학이 세계 연극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만~5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