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한국인 비행사' 안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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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보니 엄복동의 자전거.”
암흑의 일제시대 때 하늘과 땅에서 일본인들을 누르고 조선 민중의 자존심을 세워준 두 영웅을 칭송하던 노래다. 그 주인공 중 한 명인 안창남은 1930년 4월2일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 비행학교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29세의 젊은 나이였다.안창남은 서울에서 태어나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비행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2년 도쿄와 오사카 간 우편비행대회에서 일본인 조종사들을 누르고 우승하면서 민족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곧바로 ‘안창남 고국방문 후원회’가 결성됐고 한 달 뒤 경성(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역사적인 고국방문 비행을 했다. 당시 경성 인구 30만명 중 5만명이 넘게 지켜봤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1924년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중국 비행학교 교관으로 활약하며 항일독립단체인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했다.
안창남이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라는 데는 논란이 있다. 1992년 공군은 “1920년 2월 미국에서 비행 훈련을 받은 이용선, 이초 등이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안창남이 한국인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어준 최초의 비행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