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호수의 여왕' 리디아 고, 세리 넘고 세리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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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고, LPGA ANA인스퍼레이션서 역전승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파72·6769야드)는 ‘장타자의 천국’이라는 평을 많이 듣는다. 전장이 긴 데다 좌우로 심하게 굽은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치면 2온이 가능한 파5홀이 많아서다. 이곳에서 ‘호수의 여왕’으로 등극한 메이저 챔프들의 면면이 일단 그렇다. 브리타니 린시컴(31·미국), 렉시 톰슨(21·미국) 등 최근 2년간 미션힐스를 정복한 챔프가 280~290야드 안팎을 날리는 신흥 장타자다. 2008년 챔프인 로레나 오초아(35·멕시코)와 2001, 2002년 연승을 포함해 세 번이나 우승한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46·스웨덴) 역시 장·단타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컴퓨터 장타’로 이름이 높았다.
'태국의 희망' 쭈타누깐 3연속 보기
리디아, 18번홀 버디 성공해 역전
지난해 이어 두 번째 '최연소 챔프'
4일(한국시간) 이곳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총상금 250만달러) 결승전에서도 이 같은 말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괴물급 장타자’인 톰슨과 에리야 쭈타누깐(21·태국)의 기세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수의 여왕은 키 165㎝의 ‘골프 천재’ 리디아 고(19·뉴질랜드)였다. 그의 올 시즌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48.21야드. LPGA투어 120위에 불과하다. 어린 나이답지 않은 평정심으로 18홀을 안정적으로 관리한 ‘강철 멘탈’이 거물 장타자들을 무력화시켰다는 평이 지배적이다.◆스스로 무너진 ‘거물’ 장타자들
단독 선두로 최종일을 맞은 톰슨은 초반부터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티샷은 페어웨이를 벗어났고 1~2m짜리 버디 기회도 공이 홀컵 옆으로 흘러가 놓쳤다. 2위 쭈타누깐이 이 틈을 비집고 나섰다. 장타자 쭈타누깐은 2번 아이언과 3번 우드로만 티샷을 했다. 정확도와 장타를 동시에 잡겠다는 포석이었다. 그는 9번홀부터 12번홀까지 3연속 버디를 잡으며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문제는 멘탈이었다. 투어 우승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쭈타누깐은 경기 막바지에 급격히 흔들렸다. 16번홀과 17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스스로 침몰했다. 18번홀마저 보기를 기록한 그는 10언더파 4위로 경기를 끝냈고, 태국 골프팬이 염원하던 LPGA 첫 승도 함께 날아갔다. 톰슨도 샷을 바로잡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1오버파를 적어내 합계 9언더파 단독 5위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2승 ‘위업’
리디아 고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경쟁자들의 성적은 관심 밖의 일이라는 듯 자신만의 게임을 이어나갔다. 5번홀과 8번홀에서 버디를 잡은 리디아 고는 17번홀까지 9개홀을 파로 지키며 때를 기다렸다. 11번홀(파5)에선 위기가 찾아왔다. 티샷부터 공이 페어웨이를 벗어났다. 세 번째 샷은 벙커로 들어갔고, 네 번째 샷으로 그린에 올린 공과 홀컵의 거리는 5m가 넘었다. 리디아 고는 그러나 침착하게 집어넣었다.마지막 18번홀(파5)에선 전인지(22·하이트진로), 찰리 헐(20·영국)과 달리 2온을 노리지 않았다. 대신 안전한 버디를 잡는 작전을 택했다. 세 번째 웨지샷이 홀컵 50㎝ 옆에 떨어졌다. 그러고는 쭈타누깐의 마지막 티샷을 기다렸다. 버디면 연장, 이글이면 승자가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티샷이 왼쪽 워터해저드에 빠졌고 재역전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챔피언 퍼트를 완성한 그는 캐디와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3언더파 69타. 최종합계 12언더파로 LPGA투어 최연소 메이저 2승 기록(18세11개월10일)을 세운 순간이었다. 이전 기록은 박세리의 20세9개월이었다.
허리 부상 후 한 달여 만에 투어에 복귀한 ‘슈퍼 루키’ 전인지도 이날 버디 3개를 추가했지만 16번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우승 동력을 잃었다. 11언더파 공동 2위. 4타를 줄이며 분전한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박성현(23·넵스)과 공동 6위(8언더파)에 이름을 올렸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