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택배, 불법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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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소매점 65곳 적발서울의 한 백화점에 입점한 주류전문소매점 A사는 매년 명절에 기업과 개인으로부터 와인 선물 의뢰를 받는다. 전화로 주문받은 뒤 기업이 전달한 주소로 와인을 택배로 보냈다. 이 같은 와인 택배는 주류법상 불법이다.
현행법은 대면 판매만 허용
현행법 "술은 대면거래만 가능…배송도 안돼"
기업들 대량구매 땐 실수요증명서 세무서 제출
"대면결제하면 판매점의 택배 대행 허용해야"
국세청은 와인 등 술을 전화나 인터넷으로 판매하고 배송까지 해준 주류전문소매점 65곳을 적발했다고 10일 밝혔다. 작년 11월부터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거나 독립 매장을 차려 와인 등 술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소매점 119곳을 대상으로 기획점검을 벌인 결과다. 이들에게는 업체당 최대 500만원, 총 2억68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주류법상 술은 구매자가 직접 매장에서 사고 물건을 가져가는 ‘대면거래’만 할 수 있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이번 적발을 계기로 택배를 활용한 상당수 와인 선물이 불법 거래임이 밝혀지면서 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 개인 간에도 전화로 와인을 주문해 지인에게 선물하는 일이 흔한데, 어디까지 불법으로 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가정에서 치킨 등을 주문하면 술을 같이 배달해주는 것도 위법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단속이 이뤄지지 않아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불법과 합법 사이…아슬아슬한 '와인 선물 택배'국세청이 불법으로 와인을 판매하는 업체에 대해 문제삼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전화 및 인터넷 등으로 와인을 주문받아 판매(통신판매)했다는 것과 주문 받은 뒤 택배회사를 이용해 배송까지 해준 것이 현행 주류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와인 등 주류(전통주 제외)는 ‘대면 거래’를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다. 청소년의 술 접근을 막자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통신 판매는 소비자의 신원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모호한 ‘와인 택배’ 기준
국세청은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등을 마련해 인터넷·전화·이메일 등을 통한 통신판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합법적인 대면 거래 요건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소비자는 판매점으로 직접 나와 대금결제를 하고 주류를 인수해야 한다.여기서 ‘인수’ 범위를 놓고 규제당국과 시장의 인식에 큰 간극이 벌어져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 선물용 등으로 와인을 구매해 택배 또는 퀵서비스를 이용해 배송할 때 ‘합법과 불법 거래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는 것도 이 규정이 모호하게 돼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국세청은 인수 요건을 충족해 와인 등을 배송하려면 △소비자는 직접 매장에 나와 결제하고 △택배업체를 통한 배송까지 마쳐야 한다고 설명한다. 택배비를 소비자가 결제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배송의 최종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는 만큼 택배업체가 물건을 가져갈 때까지 구매자는 매장을 떠나서도 안 된다.
◆음성적 불법 거래 ‘만연’대기업은 이런 상황에 맞춰 고객에게 와인 선물을 할 때 실무 직원이 매장에 나와 결제한 뒤 제3의 택배업체를 통해 배송까지 직접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업은 명절선물 등으로 와인을 대량 구매할 때 관할 세무서에 ‘실수요자(와인을 받을 고객)증명서’를 제출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이 명절 선물 등을 위해 와인 등을 배송할 때는 불법거래가 만연하고 있다는 게 국세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 입점한 주류판매점에 문의한 결과 “원래는 선물 배송을 안 해주지만 특별행사 기간에는 10만원 이상 구매하는 고객에겐 배송을 해준다”고 말했다. 다른 백화점의 주류전문소매점도 “서울 시내라면 별도 비용 없이 선물로 배송을 해준다”고 설명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세청이 와인 판매업체가 직접 와인을 대량 발송하면 불법이라고 해 매장 직원들의 개인 명의를 빌려 ‘대리인 발송’을 하기도 한다”며 “이것도 불법이긴 하지만 고객 편의를 위해 불가피하게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고 했다.
◆‘치맥 배달’도 불법
이 문제는 가정에서 치킨이나 중국요리를 배달 주문해 먹을 때도 발생한다. 치킨이나 음식과 함께 술을 같이 배달해주는 것도 대면거래 원칙에서 위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음식점은 주류 유통 자체가 금지돼 있다. 주류를 배달하다 적발되면 과태료 부과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실제 단속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무당국 관계자는 “음식점이 영세 규모로 영업하는 곳이 많아 일일이 단속하고 과태료를 부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와인 등 술은 무게가 많이 나가 직접 들고 다니기 힘든 만큼 소비자가 매장에 찾아와 주문하고 결제했다면 택배는 주류 판매자가 대행해주는 방안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영국과 일본은 주류의 통신판매가 허용돼 있다. 미국은 50개주 가운데 플로리다 텍사스 등 24개 주에서 통신판매가 가능하다.
이상열/김용준/심성미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