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샌더스 vs 월스트리트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자칭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미국 대선판을 달구고 있다. 구부정한 행색의 70대 노정객에 20~30대가 열광한다. 청년들은 평생 지조를 지킨 순정 스토리를 들은 듯 그의 오랜 투쟁적 삶에 공감을 나타낸다. 월스트리트 대형 은행 해체, 최저임금 50% 인상, 공립대학 등록금 무료 등의 손에 잡히는 파격 공약도 인기 배경이다.

미국은 사회주의적 전통이 취약한 나라다. 인민당의 제임스 위버가 1892년 대선에서 100만표 넘게 득표하기도 했지만 ‘첫 혁명지는 미국이 될 것’이라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장담은 빗나갔다. 러시아혁명 이후 좌파가 득세한 20세기 초반에도 미국은 달랐다. 당시 미국노동총연맹(AFL) 같은 전투적 조직에서조차 반사회주의 노선이 뚜렷했다. 그래서 샌더스의 선전은 ‘사건’으로 불린다.‘미국 예외주의’를 깬 샌더스

미국 좌파의 부진은 ‘미국 예외주의’라는 틀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대부분의 미국인은 출세 기회가 보장되는 평등한 세상에 산다는 확신이 남다르다”고 한탄한 그대로다.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한 미국 체제가 ‘자본주의 너머의 세상’을 그리는 사회주의 이상을 이미 구현한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미 대선에서 좌파가 주류 정치인과 대등하게 경쟁한 사례는 샌더스 이전에도 한 번 더 있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5년 휴이 피어스 롱이라는 국가사회주의자가 ‘부를 공유하자(share our wealth)’는 슬로건으로 서민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대기업과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빈곤층에 매년 5000달러씩 분배하겠다는 급진적인 공약으로 큰 논란도 불렀다. 이 포퓰리스트는 반대파의 총탄에 마흔두해 생을 마감했고 장례식엔 1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미국이 80여년의 시차를 두고 샌더스와 롱의 과격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뭘까. 빈부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진 시기라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1930년께 미국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24%로 사상 최고를 찍었다. 이후 40년 동안 8%까지 급락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최근 23%로 치솟았다. 주요 선진국 중 압도적으로 높다. 미국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99%의 행동을 선동하니 먹힐 수밖에 없다.

실현된적 없는 좌파정책의 환상

샌더스는 월스트리트를 ‘만악의 근원’으로 치환시킨다. 인종차별도 ‘월스트리트의 불법 때문’이고, ‘역대 최대 정부를 만들 것이냐’는 비아냥에도 ‘월가의 탐욕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맞받아친다. 이 같은 ‘기·승·전·월스트리트’식 화법이 얼마나 공감을 받느냐가 운명을 가를 것이다.형세는 녹록지 않다.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단순하고 이상론에 치우친 진단과 해법이 미국에 독이 될 것이란 쪽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민주당 내에서도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좌파 정책의 환상은 실현된 적이 없다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미국 예외주의’ 시각으로 보면 ‘1% 독주’의 복잡한 이면도 드러난다. 미국은 자수성가형 부자 비율이 월등히 높다. 상위 10대 부자 중 일곱 명이 당대에 거대한 부를 일궈냈다.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 마크 저커버그 등이 그 면면이다. 세계화와 ‘숙련편향적 기술진보’로 극대화된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 보상이 양극화를 악화시킨 주범이라는 건 역설이다. ‘자본주의 적자’ 미국의 11월 선택이 궁금해진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