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생사기로 선 '국내 1호 선사' 한진해운

채권단으로 넘어가는 한진해운

'영욕의 한진해운'
1977년 '1호 선사' 대한선주 인수…2006년 조수호 회장 타계 후 시련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 맡아…2008년 금융위기 후 자금난

2014년 한진그룹 자회사로 편입
1조원 이상 쏟아 부었지만 5조 넘는 부채 결국 감당못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자금난을 겪는 한진해운 경영권을 22일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1호 선사인 한진해운의 ‘비운의 역사’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진해운은 2002년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뒤 독자노선을 걸으며 사세를 키웠다. 그러나 2006년 3남인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타계하며 수많은 부침을 겪었다. 이후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결국 채권단 손에 넘어가게 됐다.
1977년 설립 후 국내 1위 선사로한진그룹의 역사는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故) 조중훈 회장이 그해 11월 인천 해안동에 한진상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한진은 베트남전쟁 때 미군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며 급성장했다. 1967년 해운업 진출을 위해 자본금 2억원으로 대진해운을 세우고, 같은 해 9월 동양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를 인수했다.

1969년에는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부실투성이였지만 조중훈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으로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현재의 대한항공으로 탈바꿈시켰다.

1977년엔 한진해운이 출범했다. 한진이 육·해·공을 망라한 국내 유일의 수송 전문 그룹으로 자리 잡은 해였다. 한진해운의 첫 번째 위기는 1986년에 왔다. 불황에 따른 적자 누적을 이기지 못하고 경영 위기를 맞았다. 조중훈 회장이 경영 혁신과 구조조정을 통해 가까스로 정상화를 이뤄냈다. 1988년엔 1940년대 설립된 국내 1호 선사인 대한선주를 인수하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로 올라섰다.조수호 회장 타계 후 ‘흔들’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이 2002년 11월 타계하면서 한진그룹은 조금씩 격랑에 휩싸였다. 종합물류기업을 꿈꾸던 한진이 네 개 그룹으로 쪼개지면서다. 형제간 계열 분리를 통해 장남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과 한진그룹, 차남 조남호 회장은 한진중공업그룹, 3남 조수호 회장은 한진해운, 4남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금융을 나눠 맡았다.

한진해운은 조수호 회장이 2006년 타계하면서 본격적인 시련을 맞기 시작했다.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1년 뒤인 2007년 남편을 이어 한진해운 경영을 맡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황이 나빠지면서 경영난을 겪었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최 회장과 시숙인 조양호 회장 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며 “당시 조양호 회장이 장남으로서 책임경영을 위해 한진해운의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고 말했다.한진해운 경영권 가져간 조양호 회장도 포기

2014년 조양호 회장은 독자경영을 해오던 한진해운을 한진그룹 자회사로 편입했다. 조양호 회장은 이후 한진해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직접 한진해운의 경영난을 돌파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이 흑자로 돌아설 때까지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최 회장은 한진해운이 빠진 한진해운홀딩스의 회사명을 유수홀딩스로 바꾸고, 기존에 운영해오던 해운업 관련 정보기술(IT) 사업 등만 맡았다.

한진해운은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쥐면서 2014년 24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15년엔 36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회생의 기운이 감돌기도 했다. 하지만 해운업황이 받쳐주지 않았다. 5조6000억원으로 급증한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한진해운이 점점 어려워지자 최 회장 일가는 지난 21일 마지막까지 들고 있던 한진해운 주식 96만7927주(0.39%)마저 전량 매각했다. 최 회장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리 손을 턴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최근 들어선 한진해운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압박까지 거세졌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조양호 회장을 만나 자율협약을 권한 데 이어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서 기업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 경영권을 포기하고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자율협약에 맡기기로 결정한 이유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