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대학도 정부도 '칸막이'…'알파고' 만든 융·복합인재 못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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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00일 맞은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서울대생도 토론수업 힘들어…주입식 교육 한계
조선 등 제조업 쇠락…4차산업 혁명에 대비해야
정치논리에 얽매여 대학개혁 등 현안 미뤄선 안 돼

주입식 교육으로 불리는 지식 암기는 “용도를 다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과거에는 조선 철강 반도체 등 선진국 제조업을 따라잡기 위해 모두가 똑같이 외우고, 반복해 숙달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창의형 인재를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총리는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들조차 논문 주제를 잡지 못해 교수 입만 바라보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아직도 획일적인 교육의 잔재가 여전하다는 얘기다.이처럼 상황이 심각한데도 “교육이 정쟁(政爭)의 대상이 돼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부총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1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이 부총리를 24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창의형 인재 양성을 강조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정책이긴 합니다만 저 역시 서울대에 있을 때 절감한 사안입니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토론식 수업을 해보려다가 실패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아는 지식은 많은데 이것을 엮어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능력이 너무 떨어집니다.”▷무엇이 문제입니까.
“한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입니다.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수출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자본도 자원도 부족한 나라에서 이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인적 자원입니다. 소위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이 통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졌습니다.”
▷‘알파고 신드롬’과도 연관된 얘기인 것 같습니다.“맞습니다.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의 대결로 이목을 끌었던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 같은 연구가 한국 교육 현실에선 쉽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은 컴퓨팅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이공계 연구와 인류학, 심리학 등 인문학이 결합돼 탄생했습니다. 융복합을 위한 학제 간 연구가 필요한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우리 대학들은 최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게 중요하던 시절의 학과 편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칸막이가 많습니다.”
▷초·중·고교 단계부터 교육방식이 바뀌어야 할 텐데요.
“3년 전부터 추진해 올해 3213개 전체 중학교로 확대할 예정인 자유학기제가 우선 정착돼야 합니다. 적어도 한 학기만이라도 시험에서 해방돼 직업 체험 등 진로 탐색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지난해 중학교의 80%가량이 자유학기제를 시행했습니다. 애초 목표인 50%를 크게 웃돈 것입니다. 자유학기제에 참여한 일선 교사들은 한결같이 ‘교실이 살아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책상에 엎드려 자던 아이들이 줄어들고 교사도 더 열의를 갖고 수업에 임하게 된다는 겁니다.”자유학기제 3년…교실에 生氣
▷자유학기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저만 해도 중학교 1학년 때 엔지니어의 꿈을 키웠습니다. 1965년 신진자동차가 출범하는 등 1960년대는 국내 자동차산업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죠. 중학교에 다닐 때 집 근처 자동차정비소에서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정비사들의 모습에 끌려 ‘이 길이다’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동안 공교육이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데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고등학교 때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과도기인 중학교 때 각자 적성을 찾아주도록 하자는 게 자유학기제의 취지입니다. 앞으로 1학년 외에 다른 학년으로 좀 더 확대하는 방안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대학 입시에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반영 비율을 높이면서 입시가 너무 복잡해졌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시험 한 번에 당락을 결정하던 과거 입시 제도는 단순화라는 장점이 있는 데 비해 어떤 한 분야의 우수성을 가진 사람만 뽑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창의형 인재가 필요한 현시점에서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교사들이 오랫동안 학생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재능을 발견해 적합한 진로 지도를 해주자는 게 학생부 전형의 취지입니다. 예를 들어 수학 과목도 단순 암기식이 아니라 공식을 개발한 수학자의 일대기를 발표하고 토론하면서 종합교육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교육부를 맡으면서 ‘이건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정책이 있습니까.
“정권 후반기에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시작한 일들을 제대로 정착시켜 정부가 바뀌더라도 교육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도록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 목표를 길게 세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학기제도 10년, 20년 뒤 사회에 나갈 인재를 양성한다는 차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 구조개혁이 시급합니다. 2023년까지 학령인구 16만명이 부족해 평균 규모(1600명) 대학 100개가 신입생을 한 명도 충원하지 못하는 위기에 직면할 것입니다.”
글로벌인재포럼 세계가 '주목'
▷대학 구조조정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라는 평이 많습니다.
“부실 대학을 문닫게 하는 등 대학 구조조정을 연착륙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와 동시에 능력 중심 사회가 되도록 교육체계를 바꾸는 일도 병행할 계획입니다. 우리나라는 인구 약 5000만명에 대학이 330여개에 달합니다. 대학 진학률은 70%를 웃돌고요. 이런 비효율을 없애려면 고졸 취업자가 사회적으로 대우받고 존중받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취업 후에 경력을 쌓은 뒤 모자라는 공부를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문은 더 넓힐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학은 그야말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곳으로 탈바꿈할 겁니다.”
▷그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교육정책을 추진할 때 고려해야 할 외적 요소가 너무 많다는 데 놀랐습니다. 만 3~5살 미만 어린이에게 무상보육을 지원하는 누리과정에 쓰일 예산을 누가 내야 하는지를 놓고 정쟁이 벌어지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 대해서도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로스쿨 입시와 관련해 다양한 인재 등용 못지않게 공정성도 중요한 가치입니다. 제도나 절차적으로 결함은 없는지 확인하자는 게 교육부 방침입니다. 작년 12월부터 약 3개월간 입학실태 조사를 했고 결과를 정리 중입니다. 정리가 끝나는 대로 이른 시일 내 발표하겠습니다.”
▷오는 11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으로 열한 번째 글로벌 인재포럼을 엽니다.
“글로벌 인재포럼은 교육의 힘으로 국가 발전을 이뤄낸 한국인의 저력을 해외에 알리고, 국가 차원에서 미래 전략을 짜는 데 중요한 행사가 됐습니다. 2006년 시작해 지난 10년간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인 빌 게이츠 등 1600여명의 글로벌 리더들이 포럼에 연사로 참여했습니다. 글로벌 인재포럼의 초청을 기다리는 세계 석학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글로벌 인재포럼이 빈곤, 재난 등 인류 공통의 문제 해결을 위한 인재 개발 의제를 지속적으로 주도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이준식 부총리는…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