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기업인-한경 데스크 현장 토론] "같은 규제라도 지방이 더 큰 타격…수도권에 인재 뺏기기 일쑤"

경영 애로사항 쏟아낸 기업인들

"지방 명문장수기업 육성을"
중기청·조달청과 정례모임 필요…'대잇는 기업' 설자리 넓혀야

"IoT·인공지능의 도시"
소프트웨어 기업 시너지 극대화…제조업처럼 '집적단지' 조성을

"수출기업 더 뛸 수 있게"
항만 없는 내륙도시 대구…물류 인프라 확충 시급
대구 문화동 노보텔앰배서더호텔에서 지난달 29일 열린 ‘대구 기업인과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데스크 오찬간담회’에서 기업인들(왼쪽)이 지방 기업의 어려움, 현장 실정에 맞지 않는 법과 제도의 개선 필요성 등을 말하고 있다. 이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한경 편집국 데스크단(오른쪽). 도시락을 먹으며 2시간 넘게 진행된 간담회에서 대구 기업인과 한경 데스크단은 첨단산업 육성 및 섬유, 기계 등 기존 주력산업의 고도화 방안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구=김영우/김범준 기자 youngwoo@hankyung.com
대구 문화동 노보텔앰배서더호텔에서 지난달 29일 열린 ‘대구 기업인과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데스크 오찬간담회’에서 기업인들(왼쪽)이 지방 기업의 어려움, 현장 실정에 맞지 않는 법과 제도의 개선 필요성 등을 말하고 있다. 이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한경 편집국 데스크단(오른쪽). 도시락을 먹으며 2시간 넘게 진행한 간담회에서 대구 기업인과 한경 데스크단은 첨단산업 육성 및 섬유, 기계 등 기존 주력산업의 고도화 방안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구=김영우/김범준 기자♣♣ youngwoo@hankyung.com
“100년 이상 가는 ‘작지만 강한’ 기업을 일구는 것이 꿈입니다. 도움이 절실한데 오히려 법과 제도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김지미 시마 대표)“부동산 훈풍이라고 하지만 지방 건설사는 굶어죽을 판입니다.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박정배 우방 대표)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달 29일 대구시, 대구상공회의소 등과 대구 문화동 노보텔앰배서더호텔에서 대구 혁신브랜드 전략 콘퍼런스를 주최했다. 이날 부대행사로 열린 대구 기업인과 한경 편집국 데스크의 오찬간담회는 ‘한풀이’의 장이었다. 2시간 넘게 이어진 간담회에서 대구 기업인들은 지방 기업의 설움을 토로하고 현장과 동떨어진 정부 규제를 없애달라고 요청했다. 빈번한 세무조사는 이미 어려운 지방 기업의 활동을 더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인들은 “차라리 세율을 높이더라도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을 뒤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무엇보다 ‘인력 확보’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훈 이시스 대표는 “지방에 위치한 탓에 수도권보다 인재를 채용하기가 힘들다”며 “대구 지역 대학에서도 많은 정보기술(IT) 인력이 배출되지만 이들은 대구가 아니라 수도권에서만 취직하려 한다”고 했다.대구 기업인은 한경이 ‘중소기업의 파수꾼’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최우각 대성하이텍 회장은 “대구 등 지방에도 수도권 못지않게 오랜 전통이 있고,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회사가 많다”며 “이들을 조명한다면 중소기업인은 기가 살고, 회사 경영에 참고할 만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우각 대성하이텍 회장=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에 아쉬움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4.29%로 가장 높지만 효율은 낮다고 본다. ‘선택과 집중’이 제대로 안 돼서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한 회사에 최대 세 개의 과제까지만 지원하는 총량제를 운영한다. 다양한 곳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꼭 필요한 연구지만 기존 과제 때문에 지원을 못 받아 포기하는 일이 빈번하다. 중소기업이 홀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도 쉽지 않다. KOTRA의 도움은 큰 힘이 된다.▷이익재 세신정밀 회장=아직도 가업승계를 ‘부의 세습’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스위스에선 직원 10명도 안 되는 소기업이 세계적인 명품을 만든다. 2~3대에 걸쳐 기술 노하우가 축적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상속세, 증여세 등 승계 부담을 줄이고 명문장수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김지미 시마 대표=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산학협력이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 독일의 지방도시 아헨을 방문했을 때 아헨공대를 보고 충격받았다. 인근 기업과 공동으로 R&D를 하고, 대학교 주변 근로자들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까지 갖춰놨더라. 도시가 학교고, 학교가 도시였다.

금융권이 기계담보 대출을 기피하는 것도 문제다. 은행들이 담보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얼마 전 은행에 갔더니 중고 방적설비를 들여놔서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비록 중고지만 최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어떤 회사의 기계보다 뛰어난 성능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금융회사도 유연하게 접근해줬으면 한다.
▷진덕수 대홍코스텍 회장=철강업계는 말 그대로 ‘비상’이다. 중국 철강업체가 생산량을 늘리면서 ‘철이 물보다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업체는 생산량을 줄이며 대응해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 회사들이 감산에 들어갔다. 우리 같은 중소 가공업체는 철강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줘야 철강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

여성 기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도 어려운 부분이다.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대기업에 납품하고 싶은데 여성 기업인이라서 그런지 품질이 좋아도 불이익을 보는 것 같다.

▷최영수 크레텍책임 회장=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이 제조 분야에 편중돼 있다. 제조업을 따지는 조건도 까다롭다. 우리 회사는 판매 공구의 70%를 외부에서 들여오고, 30%는 자체 제조한다. 유통업체로 분류돼 각종 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다. 공단에 입주하고 싶어도 다른 제조사의 4~5배 가격을 부담해야 한다.

▷박종률 대성에너지 본부장=산업통상자원부는 도시가스가 들어가기 힘든 지역을 대상으로 LPG저장탱크를 통한 공급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군과 면 단위 사업에만 지원하고 있는데 이는 현장을 모르는 얘기다. 광역시라도 변두리로 나가면 도시가스 배관망을 설치하는 게 수지에 안 맞는 곳이 많다. LPG배관망 사업을 광역시의 외곽 소외지역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훈 이시스 대표=소프트웨어를 ‘공짜’라고 여기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 대구가 인공지능, IoT 등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나려면 소프트웨어 업체가 모인 집적단지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회사도 모여 있으면 시너지가 발생한다. SW집적단지가 조성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다같이 힘써달라.

▷박정배 우방 대표=지방에 있는 건설사는 엄청나게 어렵다. 건설사 순위를 보면 50위 안쪽에 있는 대구 업체는 한 곳도 없다. 지방은 부동산 규제의 영향도 훨씬 크게 받는다.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대표적이다. 대구에서는 아파트 분양률이 급락하는 등 두드러질 정도로 충격이 빠르게 왔다.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지역 혁신도시 개발 등의 사업이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 건설 발주를 할 때 대기업과 지역 건설업체가 5 대 5로 구성한 컨소시엄에 더 많은 가산점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조만현 동우씨엠 회장=부동산과 관련한 정부의 통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전세난과 월세 급등 등이 빠른 속도로 발생해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임대주택 촉진법 등 개별적인 법률만 내놓고 있다. 종합 대책을 내놓는 해외 선진국과 대조적이다. ‘종합부동산서비스진흥법’같이 향후 20년을 염두에 두고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특별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병우 동양산업건설 대표=조달청 납품을 해보면 지방 기업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수도권에 있는 회사보다 정보가 부족하고, 공무원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다. R&D 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다. 조달청장, 중소기업청장 등 주무부처와의 간담회를 정례화해 ‘지방에도 이런 우수한 기업이 많구나’ 하는 것을 알리는 대책이 있으면 한다.

▷이재경 대구상의 상근부회장=어떤 산업이든 꼭 필요한 것이 물류 기반이다. 대구는 바다를 접하고 있지 않은 내륙도시다. 항만이 없어 수출 기업의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기업 공장을 유치하는 데도 애로가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대적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 지역 기업인도 ‘인프라가 확충돼야 대구가 살 수 있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대구=오경묵/이현동/김희경 기자 okmook@hankyung.com■ 토론회 참석한 한경 편집국 데스크

유근석 편집국장, 하영춘 부국장, 허원순 논설위원, 조일훈 증권부장, 서화동 문화스포츠부장, 김태철 중소기업부장, 김홍열 국제부장, 유은길 한국경제TV 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