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경매 '007작전'…첫날부터 1조 베팅

현장 리포트
휴대폰 압수, 화장실도 별도, 끼니는 배달음식…

이통3사 가격 담합 막으려
매일 8시간 입찰실서 격리…40분씩 하루 7라운드 경매
'승자의 저주' 부담 요인
2011·2013 두 차례 경매서 KT 공격 입찰…낙찰가 급등
소비자 통신요금 인상 우려도
낙찰금액이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동통신 3사의 주파수 경매가 지난달 29일 시작됐다. 첫날 경매에서는 광대역 LTE 서비스에 사용할 수 있는 2.6㎓대역 40㎒폭의 가격이 6553억원에서 9500억원까지 하루 만에 3000억원가량 치솟는 등 치열한 호가 경쟁이 벌어졌다.

주파수 경매는 2011년 6월과 2013년 8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올해 경매 대상 주파수는 네 개 대역의 140㎒폭이다. 경매 출발선인 최저 입찰가격을 모두 합친 금액은 2조5779억원이다. 사상 최고치다. 감내할 수 있는 가격에 원하는 주파수를 가져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경쟁사가 특정 주파수를 최대한 비싼 가격에 사도록 ‘베팅’하는 것이다. 고도의 두뇌 싸움이 필요한 이유다.
첩보전 방불케 하는 주파수 경매

경매가 벌어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보통신진흥협회(TTA) 건물 지하 1층은 24시간 외부인 출입이 통제되는 말 그대로 철통보안이다. 이동통신 3사의 입찰 담합을 막기 위한 조치다.

회사별로 임직원 세 명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창문도 없는 독립된 입찰실에 ‘격리’된다. 입찰실에는 도청 방지 장치는 물론 올해 폐쇄회로TV(CCTV)까지 설치됐다. 각사 임직원이 서로 마주치지 못하도록 화장실 이용시간도 따로 배정하고, 점심도 입찰실에서 배달 음식으로 해결한다.올해 경매는 3사가 50회차(라운드)까지 오름입찰을 벌인다. 라운드별 최소 입찰증가분은 0.75%로 정해졌다. 다음 라운드에 참여하려면 전 라운드 승자의 입찰액보다 0.75% 이상 많이 써내야 한다는 의미다.

베팅 상한선은 없다. 각사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경쟁사가 진짜 이 주파수에 관심이 있는지, 아니면 상대를 견제하기 위한 허수 베팅인지를 간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7라운드의 경매가 이뤄지는데 라운드당 입찰서 작성시간은 40분이다. 40분 동안 전 라운드 입찰 결과, 경쟁사의 전략 등을 종합 분석해 다음 라운드의 입찰 금액을 써내야 한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투자 금액이 회사별로 최고 1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각사 최고경영자(CEO)가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매판 키워 온 KT경매에서는 원하는 주파수를 따내는 게 과제지만 예상보다 과도한 비용을 지출한 회사는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과 마케팅 경쟁에서 뒤처지는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다.

지난 주파수 경매에서도 적정 가격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라운드 제한이 없었던 2011년 경매 때는 SK텔레콤과 KT가 1.8㎓대역(20㎒폭)을 놓고 86라운드까지 가는 전쟁을 치렀다. KT가 마지막에 백기를 들면서 SK텔레콤이 최저 입찰가(4455억원)보다 두 배 높은 9950억원에 가져갔다.

애초 KT는 이 대역 주파수를 2000년대 초 정부에서 할당받았다가 사용기간이 끝나는 시점인 2010년에 재할당 신청을 하지 않고 반납했다. 불과 1년 만에 반납한 주파수를 되찾기 위해 경매에 참여한 것을 놓고 경쟁사들은 어리둥절해했다.2013년 경매에선 절치부심한 KT가 1.8㎓대역 확보를 위해 돈을 쏟아부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공동 전선을 구축해 KT를 견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KT는 최저 입찰가격(2888억원)의 세 배가량인 9001억원에 주파수를 따갔다. 업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경매판을 키운 건 KT라는 업계의 볼멘소리가 많았다”며 “통신사의 과도한 주파수 비용 지출은 통신요금 인상 압박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주파수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2.1㎓대역(20㎒폭)과 2.6㎓대역(40㎒폭)이다. 800㎒와 1.8㎓ 등 주력 주파수를 보완할 주파수 대역으로 이동통신 3사가 모두 탐내고 있어 경쟁이 불붙을 전망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