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서점 중고책 판매 불꽃경쟁, 소비자 '방긋'…출판계는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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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1분기 중고책 매출 50%·교보문고 9% 늘어중고책 시장이 커지고 있다. 중고책이 주로 거래되는 대형 온라인서점들의 오픈마켓 규모가 최근 1년 새 최대 50% 증가했다. 서점들이 직접 중고책을 사고파는 직매매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경기 불황과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책을 싸게 사려는 수요가 중고 시장으로 쏠리고 있고, 대형 서점들이 이에 맞춰 중고책을 편리하게 매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대폭 강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불황에 '반값도서' 인기…출판계 "시장 생태계 파괴"
◆중고책 거래시장 ‘급성장’2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제공하는 중고책 오픈마켓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 증가했다. 지난해 1분기 매출 증가율(20%)의 두 배를 넘어서는 수치다. 중고책 오픈마켓은 인터넷에서 중고책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자유롭게 상품을 매매하는 시장을 말한다. 인터넷 플랫폼을 운영하는 대형 서점은 보통 거래액의 3~10%를 판매자에게 수수료로 받는다. 교보문고의 중고책 오픈마켓 매출도 지난해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6% 늘어난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9% 증가했다.
서점이 직접 중고책을 사서 되파는 직매매 매출도 크게 늘고 있다. 2014년 11월 ‘바이백 서비스’란 이름으로 중고책 직매매 사업에 뛰어든 예스24의 올해 1분기 관련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0% 늘었다. 인터파크의 중고책 직매매 서비스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했다.◆경기 불황과 도서정가제 영향
전문가들은 중고책 시장이 커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경기 불황을 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서적 구입비는 지난해 1만6623원으로 전년 대비 8.4% 떨어졌다. 10년 전인 2005년(2만1087원)에 비하면 21.2% 하락한 수치다.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장은 “책은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을 때 지출을 줄이는 대표적인 품목 가운데 하나”라며 “적은 돈으로 많은 책을 사려는 ‘합리적 소비’ 경향이 강해지면서 값싼 중고책으로 수요가 몰렸다”고 설명했다.
2014년 11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출간된 지 18개월이 지난 구간에 대한 대폭 할인 판매가 금지된 것도 중고책 시장 성장을 가속화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소비자들이 구간을 정가의 40~50% 수준으로 싸게 살 수 없게 되자 중고 시장을 주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조성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책의 실제 판매가가 베스트셀러는 16.2%, 스테디셀러는 40% 이상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며 “가격이 오르면서 대체재인 중고책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소비자 “상태 좋고 반값” 만족
대형 온라인 서점들은 중고책 사업을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직매매 서비스를 하는 서점들은 양질의 중고책 확보에 나섰다. 예스24는 책을 파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지난달 서울 강남역에 첫 오프라인 중고책 매장을 낸 데 이어 최근 영풍문고와 제휴를 맺고 이 서점의 오프라인 매장 세 곳에서 중고책을 사들이고 있다.
온라인 서점 중고책 사업의 ‘원조’ 격인 알라딘은 오프라인 중고 서점 수를 계속 늘리고 있다. 2011년 서울 종로에 1호점을 낸 알라딘 중고서점은 2014년 말 17곳에서 지난달 말 23곳으로 증가했다. 직매매사업을 하지 않는 교보문고는 오픈마켓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판매자로부터 중고책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는 이벤트를 지난달 초부터 오는 5일까지 한다.소비자들은 대형 서점의 중고책 사업 강화를 반기고 있다. 구간뿐 아니라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책도 살 기회가 많아져서다. 배두환 씨(33)는 “중고책은 가격이 새 책의 절반 수준인데 상태는 새 책과 다름없이 좋을 때가 많다”며 “새 책을 사기 전에 중고책이 있는지 확인해 본다”고 말했다.
출판업계는 새 책을 팔아야 할 대형 서점들이 중고책 사업을 확대하는 데 대해 “출판시장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중고책이 많이 팔리면 새 책이 적게 팔릴 뿐 아니라 콘텐츠의 2차, 3차 유통에 따른 저작권료 추가 수입도 없다”며 “출판사뿐 아니라 저자의 인세 수입도 떨어뜨려 제작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강일우 창비 대표도 “중고책의 대량 거래는 출판업계의 성장동력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