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구글이 웃는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이명박 정부 때다. 미국의 ‘특허 괴물’들이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을 상대로 특허분쟁을 벌이며 로열티를 요구한다는 뉴스가 연일 터진 적이 있다.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해외 특허 괴물을 상대할 지식재산 전문기업을 세워 국내 기업을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정작 기업은 정부에 그런 요청을 한 바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무슨 신바람이 났는지 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둬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ID)’라는 걸 만들었다. 정부 예산도 퍼부었다. 민간기업인지 공공기관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이 기관이 현재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당시 이걸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떠든 사람들은 지금 아무 말이 없다.

인공지능연구소 소동정부가 할 일, 민간이 할 일을 구분 못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구글 알파고 때문에 한국 과학기술정책이 일대 소동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판 알파고 개발을 위해 민간 인공지능연구소를 연내 출범시킨다고 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KT, 네이버, 한화생명 등이 30억원씩 공동 출자하는 주식회사 형태라는 설명이다. 근데 이상하지 않은가. 정작 돈을 낸 기업들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정부가 연구소 밑그림을 다 그리고 있으니. 충격은 미국의 구글 알파고에서 받았다면서 벤치마킹 대상은 독일 인공지능연구소라는 것도 괴이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말로는 연구소 운영에 관여하지 않고 연구비만 지원하겠다지만 아무도 이를 믿지 않는다.

지금의 정부출연연구소도 처음엔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되 자율성을 주겠다며 시작하지 않았나. 정부가 기업들의 출자로 만든 이런저런 민간 생산기술연구소들조차 정부 지원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하는 또 하나의 정부연구소로 둔갑한 지 오래다. 정부는 민간 인공지능연구소라지만 ‘사이비 민간연구소’, ‘유사 정부연구소’ 탄생이 임박했다.

미래부가 인공지능 분야에 앞으로 5년간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올 때 알아봤다. 정권 후는 알 바 아니고 일단 질러나 보자는 식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돼 미래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한다며 한국형 슈퍼컴퓨터 개발에 1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 튀어 나왔다. 아니 지금껏 슈퍼컴퓨터를 국산화하지 못해 인공지능을 못했다는 건가. 초등학생도 웃겠다.‘어전회의’로 가자고?

급기야 대통령은 알파고 쇼크는 행운이었다며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하겠다고 천명했다. 컨트롤타워 기능이 취약해 국가 연구개발 투자를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알파고 때문에 과기행정의 옥상옥이 또 하나 들어서게 생겼다. 남은 임기 동안 이 회의가 몇 번이나 열릴지는 둘째치자. 어전회의를 하면 연구개발 투자가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가설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알파고가 컨트롤타워, 톱-다운으로 나오기라도 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게 알파고 이후 벌어지고 있는 한국 과기정책의 민낯이다. 변덕이 죽 끓듯 해도 그것이 미래를 위한 변화의 몸부림이라면 또 모르겠다. 창조니, 퍼스트무버니 외치던 정부가 구글 알파고를 때려잡자며 하루아침에 모방과 캐치업으로 확 돌아선 형국이다. 하기야 정치권마저 알파고를 들먹이며 잘나가는 과학자들을 끌어내 총선 득표용으로 써먹는 판국이니. 구글은 이 소동을 어떻게 바라볼까.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