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에 오른 취약업종] 보스턴컨설팅의 경고 "조선·해운·철강 더이상 호황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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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연구원 세미나…"산업구조 재편 시급"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국내 조선 3사가 5년 뒤 생산인력을 지금보다 35%가량 줄여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선박 ‘수주절벽’이 계속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다. 철강·해운업에 대해서도 공급 과잉과 수익성 악화로 장기 불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조선 - 수주가뭄 계속 땐 인력 35% 줄여야
해운 - 고강도 비용절감으로 경영효율 높여야
철강 - 저부가제품 줄이고 기업간 M&A를
BCG는 1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발표한 ‘산업 및 기업 구조조정 방향’ 보고서를 통해 “시장상황이 바뀌더라도 한국의 조선·철강·해운업이 과거와 같은 호황을 기대하긴 어렵다”며 “더 이상 성수기는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조만간 취약업종 사업재편 방향에 대한 외부 컨설팅을 의뢰할 예정이다. BCG는 철강 등 취약업종 컨설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군 가운데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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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G 보고서에 담긴 국내 조선·철강·해운업의 미래는 암울했다. 조선업이 특히 그랬다. BCG는 올해 세계 선박발주량이 500억~700억달러 규모로, 이 가운데 국내 조선 3사(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예상물량은 150억~21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 3사가 연초 밝힌 수주목표(380억달러)의 40~55%에 불과한 수준이다.
오승욱 BCG 파트너는 “조선 3사 모두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수주하려는 경향이 강한 가운데 국내 기업 간 과열경쟁이 우려된다”며 “수주예상치를 초과하는 목표를 설정한 탓에 인력·생산의 공급과잉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향후 전망은 더 나빴다. BCG는 지금과 같은 수주 가뭄이 지속되면 조선 3사가 대규모 인력 감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생산시수(선박건조에 필요한 인력 투입시간)를 들었다.
BCG는 현재 조선 3사의 생산시수가 1억5300만MH(1MH=1명의 인력이 1시간 일하는 작업량)인데 수주가 안 되면 5년 뒤 생산시수는 1억MH로 35%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생산시수 감소에 맞춰 고용인력을 그만큼 줄이거나 협력사 외주 등으로 전환해야 손실을 피할 수 있다는 게 BCG의 진단이다.
○“조선·철강·해운, 더는 성수기 없다”BCG는 철강과 관련해선 세계적인 생산과잉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력 제품의 수익성도 계속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철강업계의 과잉생산량이 지난해 4억9500만t에서 2020년 6억1600만t으로 더 늘어나고, 열연강판과 원재료 가격차이도 2005년 t당 500유로에서 올해 168유로로 줄어들 것이란 설명이다.
BCG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늘리면서 공급과잉 우려가 커졌는데도 국내 철강업계는 근본적 경쟁력 제고 없이 수출만 늘리는 데 주력했다”며 “당분간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철강업 구조조정 사례를 벤치마크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철강업계가 1980년 이후 지금까지 생산능력을 7배 가까이 늘린 반면 일본 철강업계는 기업 간 인수합병(M&A), 저부가 제품 생산 감축 등으로 생산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했다.해운업 전망도 어두웠다. BCG는 “전례없는 불확실성과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덴마크 머스크, 중국 CMA-CGM 등 대형 선사와의 경쟁에서 국내 선사들이 뒤질 것이란 우려다.
BCG는 이 같은 분석결과를 토대로 “업황이 개선되면 국내 조선·철강·해운업체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황기를 기다리면서 구조조정을 늦춰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오승욱 파트너는 “취약업종 구조조정은 개별기업 차원에서 추진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정부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이 산업구조 재편이란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