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속의 비상장사] 수익 반토막…'블랙야크 신화' 주춤

"청계산 타는 사람들에게 히말라야 등산복 판 것이 실수"

국내 아웃도어 정복자 강태선…'재고의 늪' 탈출하나

2013년까지 매출 고공행진
주5일근무·고가 등산복 열풍에 2008년부터 매년 30% 이상 성장

무리한 성장 전략에 '발목'
2015년 영업이익 53% 급감…중국법인도 지난해 적자 전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디자인 역량 대폭 강화…친환경 제품으로 재도약 노려
2013년 이후 국내 등산복 등 아웃도어 시장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곳은 블랙야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9년 이후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창업자인 강태선 회장의 성공스토리도 크게 주목받았다. 올 1월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박람회인 ‘뮌헨 ISPO’에선 단일 브랜드로는 사상 최초로 11관왕(제품력 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해외사업 부진과 재고 누적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2년 연속 뒷걸음질친 가운데 올해 실적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외 아웃도어 시장의 공급 과잉 구조를 타개할 혁신적 제품도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강태선 성공신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다.올해 67세인 강 회장이 블랙야크 전신인 동진사를 설립한 때는 1973년. 서울 종로의 작은 가게에 불과하던 이 회사가 기업 규모로 성장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직자를 중심으로 등산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한 1990년대 말 외환위기였다. 또 다른 도약대는 2005년 주5일 근무제 시행과 함께 마련됐다. 레저인구 급증은 처음부터 고기능성 제품을 주력으로 한 블랙야크 같은 회사엔 큰 기회였다.
2008년 매출 1000억원을 처음 넘어선 뒤 2013년 사상 최대 실적(매출 5805억원)을 올릴 때까지 매년 3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3년 연속 국내 아웃도어 업체 매출 1위 자리를 지켰다. 전국의 블랙야크 매장은 354개까지 늘어났다. 매년 매출의 8%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정도로 기술을 중시한 강 회장의 품질경영이 주효했다는 평이 나왔다.

블랙야크의 실적 고공행진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4년부터다. 2013년 1105억원에 달한 영업이익은 지난해 378억원으로 추락했다. 국내 시장 포화로 수익력이 떨어진 가운데 ‘세월호 침몰’ ‘메르스 창궐’ 등이 일회성 악재로 작용했다.하지만 이 같은 외부적 요인만으로 블랙야크의 실적 급감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동종업계 경쟁사인 K2는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의 하락 폭이 전년 대비 10% 안팎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노스페이스를 판매하는 영원무역그룹의 지난해 영업이익 하락률도 전년 대비 1.8%에 그쳤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블랙야크의 고전은 성장 일변도 전략의 부작용 때문”이라며 “무리한 생산 확장과 출혈 마케팅이 회사 재무구조에 큰 부담을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블랙야크의 재고자산은 아웃도어 브랜드 간 매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2012년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2011년 60억원 정도에 불과한 재고자산 증가액은 2013년 669억원까지 폭등했다. 실적 하락이 본격화된 2014년에도 재고자산은 500억원가량 증가했다. 2014년 말에는 원가 기준으로 재고자산이 무려 2100억원까지 불어나 매출의 40%에 육박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단행한 대규모 할인 판매는 큰 폭의 수익성 감소로 이어졌다.

고기능 등산복 판매에 지나치게 집중했던 것도 결과적으로 부담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회사 측의 자평이다.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데도 고가의 원단을 고집한 게 원가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청계산 등 동네 뒷산에 오르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히말라야 등반에나 필요한 고기능 제품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이 내수 부진에 대비해 야심차게 뽑아든 글로벌 경영도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지난해 블랙야크 중국 법인(BEIJING BLACKYAK OUTDOOR)의 매출은 소폭 증가했지만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했다. 블랙야크는 1998년 중국에 처음 진출한 이후 계속 사업을 확장해왔지만 중국 시장이 기대만큼 커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2014년 말 인수한 아웃도어 브랜드 나우(NAU) 역시 아직까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블랙야크는 지난해 나우의 누적 결손으로 43억원에 달하는 지분법 손실을 봤다.

하지만 블랙야크의 성장세가 멈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강 회장은 2020년 ‘글로벌 넘버원’ 브랜드 등극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요즘도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자주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최근 친환경 소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블랙야크 제품의 가치도 커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김준현 블랙야크 마케팅본부장은 “2010년부터 독성 화학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C)이 제거된 친환경 소재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며 “2020년까지 PFC가 없으면서도 기존의 발수기능을 보유한 대안소재 제품을 대거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등산복 일변도였던 복종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스포츠 등의 분야로 다양화하고 디자인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최근 제일모직 출신인 아웃도어 디자인 전문가 기윤형 씨를 새로운 디자인실장으로 임명했다.

아웃도어업계의 한 경쟁사 임원은 “강 회장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두 개의 위기를 발판으로 고속성장을 일군 기업인”이라며 “원가와 브랜드 파워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오동혁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