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의 독주…초고속 엘리베이터 경쟁에 한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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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리포트세계 초고속 엘리베이터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도시바,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전기 등 일본 업체들이 연이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를 내놓고 있다. 반면 한국 대표 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초고속 엘리베이터 시장에서 거둔 성적표는 기대 이하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추진하는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초고속 엘리베이터 시장을 먼저 뚫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일본 3사가 초고속 경쟁 주도일본 미쓰비시전기는 1초에 최고 20.5m(시속 73.8㎞)를 운행하는 세계 최고 속도의 엘리베이터를 개발했다고 11일 발표했다. 이 엘리베이터는 중국 최고층 건물인 상하이센터빌딩 전망대용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지하 2층에서 지상 119층까지 53초 만에 이동할 수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기존에 공급할 예정이던 초속 18m의 엘리베이터 세 대 중 한 대를 이번에 개발한 엘리베이터로 대체하기로 했다.
도시바 1초에 16.8m, 히타치 20m, 미쓰비시전기 20.5m
일본, 글로벌 랜드마크 점령
미쓰비시전기, 1초 20.5m 운행…상하이에 최고 속도 엘리베이터
인프라 기업 변신 뒤 사업 육성…경영난 도시바, 엘리베이터는 챙겨
한국 국가대표 현대엘리베이터는
부산금융센터에 초속 10m뿐
초고층 빌딩 납품 실적 적어 굵직한 해외 수주 어려워
미쓰비시전기가 이번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개발하기 전까지는 히타치제작소의 엘리베이터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개발 기준)였다. 히타치는 연말 준공 예정인 중국 광저우CTF파이낸스 빌딩에 초속 20m 엘리베이터를 공급할 계획이다. 현재 운행 중인 엘리베이터 가운데는 도시바가 대만 타이베이101빌딩에 설치한 초속 16.8m 엘리베이터가 가장 빠르다. 일본 업체들끼리 엎치락뒤치락 최고 속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초고속 엘리베이터 시장 공략을 위해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지구에 35억엔(약 380억원)을 들여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 신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2017년 4월부터 연간 4000대를 생산해 중국 등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고속엘리베이터 수요 증가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히타치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존 가전 중심의 전자업체에서 사회 인프라 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엘리베이터 사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회계부정으로 경영난에 처한 도시바는 가전, 의료기기 사업부문을 정리했지만 엘리베이터 부문은 계속 끌고가기로 했다.
국내 수주 경험 부족이 ‘발목’
일본 엘리베이터 업체들은 속도 경쟁에 팔을 걷고 나섰지만, 한국 대표 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제대로 된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공급한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설치된 초속 10m 엘리베이터가 전부다. 이를 제외하면 초속 8m의 베네수엘라 정부종합청사 엘리베이터가 가장 빠르다. 일본 업체 외에도 주요 엘리베이터 업체들은 초속 10m 엘리베이터 실적이 다수 있다.현대엘리베이터는 올해 중국 제2공장 착공을 추진하는 등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초고속 엘리베이터 시장을 공략하지 못하면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힘들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랜드마크 빌딩에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납품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며 “지금으로서는 한국 시장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초고속 엘리베이터 수주가 부진한 것은 그동안 중저층 빌딩 시장 공략에 집중한 결과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과정에서 고층 빌딩보다는 중저층 빌딩에 주력했다”며 “이 전략은 당장 몸집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랜드마크 빌딩 납품 실적을 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초고속 엘리베이터 납품 실적이 많지 않다 보니 추가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국내에서 실적을 쌓지 못하다 보니 해외 수주전에서도 불리한 상황”이라며 “테스트타워인 현대아산타워에는 초속 18m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기 때문에 기술력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말했다.일본 업체가 초속 15m 이상의 엘리베이터 개발에 유독 집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점유율 1위인 미국 오티스를 비롯해 주요 엘리베이터 업체들은 초속 10m 엘리베이터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초속 15m 이상의 속도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면 탑승자들이 오히려 불편을 느낄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초속 10m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티스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 및 서울에 짓고 있는 롯데월드타워에 엘리베이터를 납품했다. 두 엘리베이터 모두 초속 10m로 움직인다.
도쿄=서정환 특파원/도병욱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