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원시 여성들은 '명품 주먹도끼'에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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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2스티브 잡스는 1960년대 인기를 끈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 사조)에서 영감을 얻어 아이폰을 만들었다. 잡스뿐이 아니다. 많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미술 작품을 보며 경영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미술사학을 전공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미술 작품을 보고 공부하는 것은 그 안에 담긴 4만년의 지혜를 얻는 기회”라고 말한다.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544쪽 / 2만2000원
양 교수가 서양미술사를 쉽게 풀어 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2권을 냈다. 출판사 사회평론이 인문학을 일반 독자에게 쉽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한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이 세상 모든 지식’ 시리즈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1권은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 2권은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을 주제로 삼았다. 이미 집필을 마친 3권 ‘기독교 미술’은 올해 12월, 4권 ‘르네상스 미술’은 내년 6월에 나오고 준비 중인 5~8권은 17세기부터 현대 미술까지 다룰 예정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미술을 단순히 ‘감정적 유희’로 보는 관점을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4만년 전 원시시대부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로 이어지는 미술사를 보면 미술이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투쟁, 다른 인간들과의 경쟁으로 이뤄진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은 어떻게 얻는가’ ‘투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등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 미술작품에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단순히 미술 얘기에 그치지 않고 철학, 정치,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고대 이집트인이 만든 장신구에서 죽음에 대한 철학을, 메소포타미아인이 그린 벽화에서 군주의 권력을, 로마 공화정의 정신이 담긴 조각과 건축물에서 부강한 나라를 이루는 비결을 읽는다.원시시대 사냥에 쓴 주먹도끼 중에는 좌우 대칭을 완벽하게 갖추는 등 필요 이상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저자는 이 유물과 관련해 진화생물학자 머렉 콘의 ‘섹시한 주먹도끼 이론’을 소개한다. 훌륭한 주먹도끼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머리가 좋다는 뜻이고, 이를 통해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원전 500년께 지어진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우아하고 기품있는 건축 양식은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페르시아 전쟁 승전을 기념하는 전승 기념물이자 아테네인의 애국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건물이어서다. 이 건축 양식은 오늘날에도 ‘권위와 품격’을 표현하고 싶을 때 되살아난다. 시대나 국가를 초월해 미국 링컨 기념관, 덕수궁 석조전, 심지어 국내 예식장이나 백화점 명품 매장에도 종종 나타난다.
저자는 미술사의 기본과 정석을 충분히 다루면서도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읽히는 데 중점을 뒀다. 독자에게 강의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딱딱한 어투 대신 친숙한 느낌을 주는 구어체를 사용했다. 미술과 관련된 책답게 거의 모든 장에 내용과 관련된 사진이나 그림이 실려 있다.양 교수는 미술사 공부의 매력을 이렇게 소개했다. “외국어를 이해하려면 그 언어의 문법과 어휘, 발음을 익혀야 합니다.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외국어를 배우면 새로운 세상 하나를 더 읽어낼 수 있게 되듯 미술 언어에 익숙해지면 문자 언어 이상의 풍성하고 생생한 소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