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수출파워 세계를 연다] 거침없는 M&A…2년 새 인도네시아에 새로 걸린 K뱅킹 간판만 200개

(1) 시동걸린 동남아발 '금융 한류'

"사서 빨리 키우자"
인도네시아 은행 인수한 우리은행, 고객 12만→32만명으로

한국식 영업이 경쟁력
스피드와 IT 강점 앞세워 두 달 걸릴 기업대출 2주에
우리은행이 2014년 말 현지 은행을 인수해 출범시킨 우리소다라은행의 자카르타 지점. 우리은행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단숨에 인도네시아 118개 은행 중 40위권 은행으로 올라섰다. 자카르타=이태명 기자
“슬라맛 다탕(selamat datang:어서오세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금융중심가 SCBD(수디르만 센트럴 비즈니스 디스트릭트). 이곳 에너지빌딩 1층에 있는 은행 지점에 들어서자 머리에 히잡을 쓴 여직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푸른색 간판이 낯익다. ‘BANK WOORI SAUDARA’. 우리은행이 2014년 말 현지 은행을 인수해 출범시킨 우리소다라은행의 자카르타 지점이다.

우리소다라은행은 118개나 되는 현지 은행 중 자산 규모 43위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성장속도는 빠르다. 우리은행이 인수한 이후 지점은 111개에서 132개, 개인 고객은 12만여명에서 32만여명으로 늘었다. 김동수 우리소다라은행 수석부행장은 “한국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쌓은 경험이 우리의 경쟁력”이라며 “5년 안에 20위권 은행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식으로 이뤄졌던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전략이 바뀌고 있다. 은행, 카드사, 저축은행 등 국내 금융회사들이 거침없는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M&A 대상은 주로 동남아 금융회사다.
인도네시아의 K뱅킹 간판 240개

우리은행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것은 1992년으로 지점 한 곳을 둔 현지법인을 세웠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도록 현지인 고객은 거의 없었다. 한국 기업이나 동포들만 상대했을 뿐이다. 우리은행이 전략을 바꾼 것은 2013년. 지점을 세워 진출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현지 은행 인수에 나섰다.마침 여건이 좋았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990년대 말 241개에 달한 은행을 지난해 말까지 118개로 줄였다. 일본, 말레이시아, 중국계 은행이 현지 은행을 속속 인수했다. 한국계 은행 중에는 하나은행이 2007년 지점 5곳을 둔 빈탕마눈갈(BIMA)을 사들였다. 김 수석부행장은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이 추가 구조조정을 통해 은행을 30~50개로 줄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며 “매물은 넘쳐난다”고 말했다.

한국계 은행의 진출이 본격화한 것은 2014년이다. 우리은행이 그해 말 소다라은행을 인수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BME(뱅크메트로익스프레스)와 CNB(센트라타마내셔널은행) 등 현지 은행 두 곳을 인수해 올 하반기 통합은행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OK저축은행의 모그룹인 아프로서비스그룹도 소액대출 전문은행인 안다라은행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잇단 M&A로 인도네시아에 한국계 은행 간판은 급증했다. KEB하나은행(지점 47개), 우리소다라은행(132개), 신한은행(60개) 등을 합해 239곳에 달한다.

줄 잇는 해외 금융회사 M&AM&A 바람은 동남아 다른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인수 대상도 은행, 저축은행 외에 한국의 캐피털사와 비슷한 소액대출 회사(마이크로파이낸스·MFI)로 다양해졌다.

가장 뜨는 지역은 캄보디아다. 우리은행이 2014년 7월 캄보디아의 소액대출 회사인 말리스를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네 건의 M&A가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웰컴저축은행이 현지 소액대출 회사 GCM 인수를 앞두고 있으며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옛 부산저축은행이 2007년 세운 현지 은행인 캄코뱅크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최근 전북은행과 컨소시엄을 이뤄 캄보디아 프놈펜상업은행 입찰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은행과 하나금융지주도 현지 소액대출 회사인 프라삭 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인수 후 한국형 영업으로 승부

현지 은행을 M&A했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서태원 신한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M&A는 영업채널을 산 것일 뿐”이라며 “대형 현지 은행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이 내세우는 경쟁력은 스피드와 정보기술(IT)이다. 우리소다라은행은 송금, 이체 등 간단한 업무를 10분 안에 처리해준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서비스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하는 데 1시간 넘게 걸리는 걸 감안해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KEB하나은행도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에서 기업대출을 받으려면 두어 달 걸리던 것을 2주 안에 해준다.IT도 한국계 은행이 갖춘 강점이다. 한국에서는 보편화한 모바일뱅킹, 인터넷뱅킹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선 초보적인 수준이다. 김 수석부행장은 “한국에서의 치열한 서비스 경쟁 경험이 동남아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카르타=이태명/마닐라=김일규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