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명맥 끊긴…조선 전통주 600여종 多~ 복원하라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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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춘주·김제 청명주 등 집에서 술 빚던 가양주 문화국내 전통주는 조선시대 때 그 종류만 수백 가지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 들어서면서 술이 과세 대상이 되고, ‘문화말살정책’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양조장을 통폐합하면서 전통주의 명맥이 급격히 끊겼다. 잊혀져 가는 전통주 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행사가 19일 서울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렸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가 농림축산식품부와 손잡고 연 ‘제9회 전통주와 전통음식의 만남 축제’다. 전통주 종류가 가장 다양했던 조선시대 주막을 재현하고, 전통주 소믈리에인 주향사 선발대회도 열었다.
양조장 통폐합으로 사라져…정부, 올초 규제 대폭 완화
○조선 말 전성기 연 전통주일본의 《고사기(古事記)》가 양조법을 일본에 전한 백제 사람 인번의 기록을 적고 있을 만큼 국내 전통주의 역사는 깊다. 곡식을 누룩으로 발효시켜 걸러낸 곡주와 쌀만 가지고 빚은 청주를 주로 마시던 조상들이 몽골에서 증류법이 전해진 고려시대부터는 소주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는 전통주가 가장 다양하던 시기다. 집집마다 술을 직접 양조해 마시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발달한 덕이다. 지방과 가문의 명주들도 이때 등장했다. 서울의 춘주, 평양의 벽향주, 김제의 청명주, 충남의 소곡주가 특히 유명했다.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전통주 종류만 600여 가지에 달했다.
화려하던 국내 전통주 문화는 일제 때 명맥이 단절됐다. 1907년 조선총독부가 주세령을 내리면서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술이 과세 대상이 됐다. 술 제조를 면허제로 바꾸면서 가정에서 술을 빚는 행위도 금지됐다. 집안과 지역마다 자리 잡고 있던 대표 양조장들을 대거 통폐합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약주, 탁주, 소주 외에는 제조하지 못하게 했다. 조선 말 여섯 집에 한 집꼴로 술을 빚던 가양주 문화가 1930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광복과 6·25전쟁을 겪은 뒤 전통주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1965년엔 정부가 양곡보호 조치로 쌀로 술을 빚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대신 밀가루 막걸리와 희석식 소주가 보급됐다.
○전통주 문화 복원 움직임정부는 1994년과 2000년 각각 약주와 탁주 공급구역을 제한하던 제도를 폐지했다. 예를 들어 포천에서 제조한 ‘포천 막걸리’를 그 지역에서만 유통하도록 한 제도를 없앤 것.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제도였지만 국내 전통주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실효성이 없어졌다.
올초 정부는 16년 만에 다시 전통주 문화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령을 완화했다. 맥주로 한정한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 대상에 탁주, 양주, 청주를 추가했다. 기존에는 양조장의 담금·저장용기가 탁주·약주는 5kL 이상, 청주는 12.2kL 이상인 경우에만 전통주를 제조할 수 있었다. 이젠 1kL 이상 5kL 미만 저장용기를 보유하면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를 받을 수 있다.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를 얻으면 음식점에서 팔거나 병에 담아 외부에 판매할 수 있다.
이날 한옥마을에서는 국세청 직원의 주류면허 취득에 관한 컨설팅, 창업 설명회 등이 열렸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전통주 문화가 다시 한번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