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조희진 검사장, '공개 법정'에 선 첫 여검사에서 검찰 68년 역사 첫 여검사장까지

조희진 의정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여성이기 전에 검사다' 되뇌며 내 안의 '유리천장'부터 깼죠"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검찰 ‘여성 1호’ 역사 쓰다
남자 동기들은 다 가는 공판부
여자라고 배제시키자 오기 생겨
빈자리 나자마자 바로 손들었죠
여자 스스로 한계 정하는 게 더 문제

가족 사랑은 ‘양보다 질’
잦은 야근에 주말없이 밤낮 일해도
남편이 아이 데리고 출근하며 외조
“엄마는 집에 안오는 사람” 말에 충격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가족에 ‘올인’검사장은 ‘검찰의 꽃’으로 불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대기업 고위 임원에 비견되는 자리다. 검사장이 되는 길은 ‘바늘구멍’에 비유된다. 동기 10명 중 1명꼴로 이 좁은 문을 통과하는 행운이 주어진다.

조희진 의정부지방검찰청 검사장(54·사법연수원 19기)은 2014년 첫 ‘여성 검사장’이 됐다. 검찰 조직이 생겨난 1948년부터 공고하던 ‘유리천장’을 66년 만에 깼다. 1990년 검사로 임관한 그에겐 늘 ‘여성 1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첫 여성 부장검사, 첫 여성 검찰교수, 첫 여성 차장검사, 첫 여성 지청장…. 법원 검찰 변호사단체의 법조 3륜 중 가장 남성 중심적인 조직으로 꼽히는 검찰에서 여성 최초 자리를 이어온 비결은 무엇일까. 조 검사장이 소개한 서울 종로구 누하동의 한식집 선인재에서 그 여정을 되짚어봤다.

연수원 여성 동기 중 ‘나홀로’ 검찰 지원산들바람이 불던 지난 12일 오후 7시 조 검사장을 만나기 위해 선인재를 찾았다.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을 나와 구불구불한 서촌 골목길을 지나자 아담한 한옥 한 채가 나왔다. 선인재는 전통 한옥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겸 음식점이다. 낮은 한옥 안에 들어서자 마음이 푸근해졌다. 조 검사장은 “부임지가 자주 바뀌다 보니 단골 음식점이 없다”며 “남편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러 음식을 조금씩 맛보기 위해 기본 코스 요리를 시켰다. 효소 샐러드, 전, 관자채소볶음이 차례로 상에 올랐다. 조 검사장은 “토마토 천연 효소로 음식 맛을 내 맵거나 짜지 않고 속이 편안하다”며 음식을 권했다. 전을 한 점 베어 물었다. 바삭하고 담백했다. 엄마가 생각나는 맛이었다. 선인재 주인이 직접 담갔다는 복분자주가 한 순배 돌았다. 달콤한 맛 대신 진한 맛이 우러났다.

조 검사장은 1987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여성이 시험에 붙으면 신문에 이름이 실리던 시절이었다. “전국에 여성 법조인이 50명도 안 되는 때였어요. 1990년에 검사로 임관했는데 전체 755명 검찰 정원 가운데 여자 검사는 저 혼자였죠. 지금은 검사 2069명 중 600명이 여성입니다. 검사 셋 중 한 명은 여자라는 얘기인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조 검사장 전에도 여성 검사는 있었다. 연수원 12기인 조배숙 20대 국회의원 당선자(국민의당, 전북 익산을)와 임숙경 변호사가 1982년 검사로 임관했다가 몇 년 뒤 판사로 전직했다. “여자가 검찰에서 버티기는 힘든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연수원 19기 여성 중 홀로 검찰에 지원했다. “법이 주는 무게와 질서가 좋아 법조인이 됐어요. 검찰 시보 생활을 하면서 꼭 검사가 돼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숨어 있는 범죄를 발견하고 증거를 수집해 범인을 잡는 과정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졌거든요.”

딱 2년만 더 했으면 했는데 벌써 26년째

‘여성 1호’라서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다. 건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여년 전 아들을 낳은 뒤 만성 장염에 걸렸다. 수개월간 수술과 입원을 반복했다. 몸무게가 30㎏대로 줄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병원 밖을 나가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이 그의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주변에서는 “건강이 우선이니 일을 그만두라”고 조언했다. 병원 근처를 거니는데 레지던트 서너 명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고 있었다. “‘아, 아이스크림 한 번만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일상의 소중함을 그때 깨달았어요. 같은 병실에 있던 시한부 환자들이 삶을 비관하다가도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살아가는 거구나’라는 생각에 힘을 얻었죠. 아프고 나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딱 2년만 검사를 더 해보고 싶다고 매일 기도했는데 벌써 20여년이 훌쩍 지났네요.”그 사이 음식들이 상을 채웠다. 토마토칠리새우, 완도문어숙회, 부추항정살이 차려졌다. 문어를 초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시원하고 쫄깃했다. 젓가락이 자주 갔다. 부추를 곁들인 항정살은 잡내 없이 깔끔했다. 조 검사장 본인은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음식에는 거의 손을 못대면서도 “많이 드시라”고 거듭 권했다.

‘여성 1호’에 얽힌 에피소드는 없는지 궁금했다. “초임 검사는 형사부에서 6개월을 일하고 자동으로 공판부에 배치됩니다. 그런데 동기 검사 중 저만 공판 업무에서 제외되고 형사부에 남겨졌어요. 아마 지휘부에서는 ‘유일한 여성 검사가 공개된 재판정에 나서면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사실 공판부는 비(非)선호 부서예요. 그런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못 가게 하니까 더 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공판부 선배가 마침 유학을 가게 돼 자리가 비자 손을 들었죠.” 그는 그렇게 첫 여성 공판검사가 됐다.

남편은 친구이자 공직 선배

26년이 흘렀다. 그 사이 검찰 조직은 남녀 구분이 흐릿해질 만큼 유연하게 바뀌었다. 의정부지검만 해도 검사 47명 중 20명이 여성이다. 여검사의 맏언니 격인 조 지검장이 여성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무엇일까. “후배들에게 늘 ‘내 안에 있는 유리천장을 먼저 깨라’고 얘기합니다. 외부에 있는 유리천장도 문제지요. 그러나 여성 스스로 자기 능력의 한계를 정해 주저앉게 하는 내면의 유리천장이 더 문제입니다. 여성이기 전에 검사예요. 실력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여성 검사에게도 일·가정 양립은 난제다. 사회생활과 가정을 조화롭게 꾸려온 선배로서 조언해줄 말은 없을까. 그는 조언 대신 일화를 들려줬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선생님에게 이렇게 얘기했대요.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이 어찌나 아렸는지…. 후배 여검사들도 똑같은 과정을 겪게 될 거예요. 그런데 저는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는 늘 같이 있으면서 돌봐야 잘 자라는 것은 아니에요. 함께 있을 때 집중해서 관심을 갖고 대화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대학생이 된 아들도 엄마가 사회생활을 해서 자랑스럽다고 얘기합니다.”

후식인 소면이 나왔다. 맑은 멸치국물에 소면이 동그랗게 말려 담겨 있었다. 얼갈이 배추김치를 얹어 후루룩 입에 넣었다. 개운하고 깔끔했다.

조 검사장이 마음 놓고 검사로서 능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곁을 지켜준 지지자 덕이 컸다. 남편인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이다. 조 검사장이 잦은 야근에 주말 근무를 밥 먹듯이 해도 “그만두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어린 아들을 맡길 곳이 없어 송 실장이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기도 했다. “남편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공직 선배예요. 남녀 역할에 대한 편견이 없어 ‘외조’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집 주방 권력은 남편이 쥐고 있어요.”

피해자 억울함 풀어줬을 때 가장 보람 느껴

조 검사장은 “피해자가 ‘억울함을 풀어줘 고맙다’고 눈물을 흘렸을 때 검사로서 가장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필리핀 여성 인신매매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업주들이 필리핀 여성을 연예인 비자로 초청해 가수로 취업시켜 준다 해놓고 실제로는 미군 상대 성매매를 강요한 사건이었죠. 경찰과 검찰에서 ‘혐의 없음’ 의견이 나자 항고해 서울고검으로 넘어왔어요. 사건을 들여다보니 여성들의 급여체계가 착취 구조여서 성매매를 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더군요. 피의자가 출국하는 바람에 인신매매죄로 기소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업주들을 성매매 알선 등으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인신매매 등 여성 관련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5년에는 여자 후배들과 《여성과 법》이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인신매매 범죄의 처벌과 피해 방지 관련 보고서를 내고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식사자리가 무르익었다. 오후 10시가 다 돼갔다. 취업난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없는지 물었다. “스페인 플라멩코 춤을 전파하는 분의 강의를 최근 들었어요. 스페인 사람들이 투우에 열광하는 이유는 투우 경기가 인생을 닮아서라고 합니다. 투우사와 황소가 1 대 1로 대결하는 경기잖아요. 누가 도와줄 수도 없고, 무섭다고 피하면 경기에서 지는 거죠. 누구나 행운이든 재앙이든 홀로 오롯이 그것을 감당하고 겪어내야 하는 것, 그게 인생 아닐까요.”
■ 조희진 검사장의 단골집 - 선인재
화학 조미료 대신 토마토 효소로 음식 맛 낸 한식당

전통 한옥을 개조한 한식당이다. 화학 조미료 대신 토마토 효소로 음식 맛을 낸다.

비빔밥과 돌솥밥이 주 메뉴다. 효소 비빔밥, 낙지·불고기 비빔밥, 영양 돌솥밥, 낙지·해물 돌솥밥 등이 있다. 연잎밥과 청국장, 들깨탕도 인기다. 밥에 곁들여 먹을 만한 메뉴로는 낙지볶음, 버섯전, 훈제오리 샐러드, 문어 숙회 등이 있다. 식사류는 1만~1만5000원, 단품류는 2만~4만원이다. 갖가지 음식을 맛보고 싶으면 코스 요리를 시키면 된다. 선인(3만5000원), 학자수(5만원) 코스가 있다. 들깨죽, 효소 샐러드, 계절 전, 낙지볶음, 항정살구이, 관자채소볶음, 새우 요리, 소면이 기본이며 학자수 코스에는 전복찜과 문어숙회가 추가된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다. 오후 3~5시는 휴식시간이다. 일요일은 쉰다. (070)8671-5282

■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실감나는 검사 모습 조언

조희진 검사장은 올해 초 사법연수원 시절 가르친 제자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는 배우가 법정 드라마를 찍게 돼 현직 검사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서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느냐고 부탁을 해왔다”고 했다. 조 검사장은 흔쾌히 수락하고 자리에 나갔다. 배우 박신양, 강소라, 류수영 씨가 나왔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주역들이다. 조 검사장은 이들과 식사를 하며 검사의 일상생활 얘기를 들려줬다. 격무에 찌든 검사가 허름한 검찰 청사에서 책상 위에 기록물을 쌓아놓고 타이핑을 하는 등 배우들이 상상하는 이미지가 바로 의정부 지검의 모습이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 조희진 검사장△1962년 충남 예산 출생 △1981년 성신여고 졸업 △1985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1987년 29회 사법시험 합격 △1990년 19기 사법연수원 수료 △1990년 서울중앙지검 검사 △1998년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 △2005년 사법연수원 교수 △2008년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장 형사7부장검사 △2009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차장검사 △2010년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2013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2015년 제주지검장 △2015년 12월~ 의정부지방검찰청 검사장

김인선/박한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