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화백 "서법으로 그리니 그림에 생동감이 넘치죠"

등단 50주년 맞은 소산 박대성 화백

국내 '실경산수화'의 대가
독학으로 8년 연속 국전 입선
경주서 화업 50주년 전시회
“혼자 공부할 때는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국화의 실경산수를 독보적인 화풍으로 발전시키며 겸재 정선의 대를 잇는 작가로 평가받는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71·사진)이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1970년대 국선에 입선한 박 화백은 남들은 한 번 하기도 어렵다는 국전에서 8년 연속 입선했다. 서울대, 홍익대 등 기라성 같은 제도권 출신 화가들이 독차지하던 국전에서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지방 출신의 국전 연속 입선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화업 반세기 예술의 진수를 한자리에 모은 기념전 ‘솔거묵향-먹향기와 더불어 살다’ 개막식이 20일 경주엑스포공원 내 솔거미술관에서 열렸다. 전시회에는 1000호가 넘는 대작 ‘솔거의 노래’를 비롯해 제주의 600년 된 당산나무에서 모티브를 얻은 ‘제주곰솔’ ‘금강설경’ 등 대담한 구도와 사실적 묘사, 속도감 있는 필치 등 스케일이 큰 완숙기에 일궈낸 대표작 82점이 걸렸다.해방둥이로 경북 청도 운문면에서 태어난 박 화백은 네 살 때 부모를 여의고 전쟁통에 한 손까지 잃었다. 당시는 어린 장애아가 제대로 보호받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에게 희망을 북돋운 것은 큰형의 격려였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큰형은 ‘그림에 소질이 있다’며 막냇동생에게 인생을 지켜나갈 힘을 심어줬다. 여섯 살 소년은 큰형에게 들은 노송도를 그린 솔거 이야기를 항상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고 60년이 훌쩍 지난 최근 ‘솔거의 노래’라는 1000호가 넘는 대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박 화백은 “그림을 그리면서 가슴속에 품어온 솔거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경주엑스포공원 내에 작년 8월 개관한 경주 첫 공립미술관인 솔거미술관의 이름 ‘솔거’도 큰형의 솔거 이야기가 연원이 됐다. 경주문화엑스포가 관리하는 솔거미술관은 8개의 전시실 가운데 5개가 박대성 전시관이다. 승효상 건축가는 박 화백 그림의 세로 길이에 맞춰 국내에서는 드문 세로 7m짜리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실을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한국 화단에서는 보기 드물게 실경산수를 독보적 화풍으로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해낸 인연은 1974년 세계 제일의 박물관이라 불리는 대만 고궁박물관에 1년간 유학을 다녀온 것이다. 그는 “중국 본토에서도 볼 수 없는 송(宋) 원(元) 명(明)대의 수천호짜리 대작들이 천지개벽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박 화백은 요즘 서예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의 독보적인 화법이 서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서법과 달리 화법에는 법이 없다”며 “무법한 곳에 서법을 넣으니 그림에서 기운이 생동하는 것”이라고 그의 화법 비밀을 설명했다. 그의 화업 50주년 기념 전시는 9월25일까지 열린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