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법정관리 땐 '공멸'…대한해운 때도 외국 선주 97% 떼여

법정관리 거친 대한해운·팬오션 사례로 보면

법원 파산부 채무조정에서 용선료 3% 수준 인정받아
팬오션때도 최고 20%만 회수

외국 선주들도 동반 부실…상장폐지에 법정관리가기도

협상에 협조적인 나비오스, 당시 큰 손해 본 경험 있어
현대상선이 외국 선주들과 용선료 인하를 위한 개별 협상에 들어갔다. 지난 18일 현대그룹 사옥에서 진행된 단체 협상에선 이견만 확인한 만큼 채권단이 새로운 시한으로 정한 이달 말까지는 성과를 내야 한다. 용선료 인하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현대상선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행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영국 조디악과 싱가포르 EPS, 그리스 다나오스, 나비오스, CCC 등 현대상선 용선료의 70%가 집중된 다섯 곳의 선주들도 큰 손실을 입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11년 대한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교사’ 대한해운 법정관리대한해운은 법정관리 신청 직전인 2011년 1월 초 2조원 규모의 용선료 부담을 낮추기 위해 60여곳의 선주와 용선료 인하 협상을 벌였다. 대한해운의 용선 규모는 140여척으로 미국 골든오션, 이글벌커, 젠코 시핑앤트레이딩, 그리스 나비오스 등 4개 선주에 집중됐다.

하지만 용선료 인하 협상이 결렬됐고 대한해운은 1월25일 법정관리를 전격 신청했다. 이후 외국 선주들은 법원 파산부의 포괄적 금지 명령으로 채권이 동결돼 마음대로 자산을 회수할 수 없었다. 당시 외국 선주의 용선료는 법원 주도의 1차 채무조정을 통해 3분의 1로 축소됐고, 2차로 다시 10분의 1로 줄었다. 결국 3% 수준만 인정받았다.

대한해운 법정관리로 외국 선주들도 큰 고통을 겪었다. 선주들도 선박 건조 때 자기 돈만 쓰는 게 아니라 외부자금(선박금융)을 끌어들이는 데 법정관리 이후 선박금융 이자 상환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2011년 대한해운의 법정관리로 주요 용선주 중 하나던 미국 이글벌커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됐으며 미국식 법정관리(챕터11)에 들어갔다. 젠코 시핑앤드트레이딩은 경영 정상화에 실패해 사모펀드(PEF)에 상당수 지분이 넘어갔다. 골든오션은 모회사의 자본 확충을 받아야 했다.

대한해운의 전 임원은 “용선료 협상에 응하지 않고 버티다 끝내 대한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외국 선주들도 큰 피해를 입은 전례가 있다”며 “해외 선주 설득에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3년 팬오션 법정관리로 독일 KG펀드가 운영하는 콘티는 물린 돈의 20%만 회수했다.

◆협상에 적극적인 나비오스현대상선 용선료의 70%를 차지하는 다섯 곳 외국 컨테이너 선주 가운데 협상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그리스의 나비오스다. 법정관리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나비오스는 2011년 대한해운, 2013년 팬오션 법정관리로 용선료를 떼인 경험이 있다. 2013년에는 용선료 대신 출자전환 주식을 받아 대한해운 지분 5.8%를 보유한 3대 주주에 오르기도 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최근 나비오스에 대해 현대상선 의존도가 높다며 신용등급을 B2에서 B3로 낮추고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현대상선과 공동운명체가 된 셈이다.

물론 해운업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외국 선주들이 100%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 대한해운은 2013년 삼라마이더스(SM)그룹에, 팬오션은 2015년 하림그룹에 각각 매각됐고 이후 일부 외국 선주들은 최고 20%가량의 대금을 회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상선과 같은 컨테이너선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글로벌 해운동맹에서 퇴출되기 때문에 재기가 어렵다. ‘법정관리→해운동맹(얼라이언스) 가입 불가→영업 불가능→매각 불가능→청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외국 선주들로서는 용선료 회수가 불가능해진다.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외국 선주들이 회수할 수 있는 자산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이런 점을 협상에서 잘 활용하면 남은 1주일 동안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